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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Jul 24. 2024

#_사고의 틀 : 부자의 생각법

당신의 생각이 담겨 있는 커다란(혹은 조그만) 그릇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사고의 틀이 존재합니다. 그걸 다른 말로 프레임이라고도 부릅니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저마다 다르게 세상을 보고 있고, 다르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여러 가지 상황이 매우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단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우리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해석과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프레임에 대해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레임이 내가 보는 '세상이라는 액자'라면, 사고의 틀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 전체를 담은 그릇'이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타인에게 설명하고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아는 것, 체험적으로 아는 것 등 모두 '안다'라는 범주 안에 있고, 우리 머릿속에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구분되어있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잠재지식, 현재지식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암묵지와 형식지로 설명할 수도 있을 텐데요.

중요한 건 우리가 가진 사고의 틀이 결국 그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단순히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부자의 생각을 하고, 그에 따라 현명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유해진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자의 카테고리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가 따로 가정할 필요가 없는 영역이겠지요.)


그럼 여기서!

'부자'에 대해서 먼저 정의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저는 부자를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돈이 많은 상태도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조건이지만, 돈이 많다고 무조건 풍요와 충만을 누리는 삶을 살진 않으니까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보다는 조금 본질적인 정의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부자에 대한 모든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부자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완벽한 정의'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무언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단순히 돈이 많다는 것도 부자의 정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면만으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부자모습을 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다는 물리적 상태를 넘어서서 그걸 통해 실제로 얻고자 하는 풍요로움과 충만한 삶을 누리고 있는 주체적 상태를 부자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이 글의 요점은 '당신이 생각을 바꾸면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공감가능한 문장이지만, 여전히 모호하죠.


누군가는 '뻔한 소리 하고 있네'라며 웃어넘길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또 다른 누군가는 저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 더 깊이 헤아려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 위 문장에 나온 단어들을 다시금 정의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위 문장을 쪼개어 보면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나)은 누구인가?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부자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내가 정의한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의 수준을 높이고, 사고의 틀을 확장한다는 것은 결국 생각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라는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둘 다 지방대 출신이었고,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탓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원하는 좋은 직장에도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자신들의 삶에 불만족을 느끼고 있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자녀들은 더 일찍부터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를 바랐습니다. 아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는 그저 공부를 잘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아이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부모는 아이의 학창 시절은 물론 대학교에 가고 취업을 할 때까지도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결핍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관철시켰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과 대기업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자신들의 30년 넘는 헌신이 드디어 꽃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회사를 1년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렸으니 이제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려고 한다고.


과연 그 부모는 자신의 하나뿐이 아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요?

경우는 많이 다르지만, 수많은 가정과 학교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가 행복한 삶에 대해 잘못 정의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들은 정작 가져보지도 못한 것을 얻기 위해 그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정작 그 길은 자녀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기 또 다른 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부모님은 이혼을 해서 가정환경이 어려운 상태였고, 할머니와 아버지, 동생과 함께 15평 남짓한 작은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 기초수급가정이었습니다. 공부는 제법 잘했지만 게임을 좋아해서 새벽까지 게임을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아이가 성실했기 때문에 게임하는 걸 이해해 줬다고 합니다.  심지어 할머니는 게임하는 손자를 응원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게임에 재능이 있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었고, 실력으로 그걸 검증하면서 고등학교도 자퇴하며 프로게이머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삶을 보면 모든 상식이 다 어긋나 있습니다. 집은 가난했고, 부모님은 이혼했고, 자신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까지 느꼈던 상황이었고, 공부 대신 게임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일반스포츠와 e스포츠를 통틀어 프로선수 중에 가장 연봉이 높은 사람이 되었고, 서른도 되기 전에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으며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죠.)


그래서 뭐, 공부는 하지 말고, 게임만 하라는 이야기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첫 번째 아이와 같은 상황으로 오히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페이커와 같은 케이스를 보며, 프로게이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하수겠지요. 박지성이나 손흥민 선수를 보고 자녀를 무작정 축구선수로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한 가지 케이스가 모두에게 정답일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인생을 시작합니다.

도착하고 싶은 목적지도 다를뿐더러, 목적지가 같더라도 가는 길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각자 출발하는 시간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이 느리다거나 가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우리가 인식하는 사고의 틀이 아직 작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어떤 잠재력을 키워야 할지 알지 못하고, 무엇을 정말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하는 건 다 좋아 보이고 정답처럼 보이는데, 내가 하는 건 뭔가 답답하고 틀린 것만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로또에 당첨된 사람보다 수백 배 더 대단한 가치의 삶을 선물 받았지만 그걸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당신의 남은 삶(시간)을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면, 부자들은 당신의 삶을 천문학적 가치의 돈을 주고서라도 구입할 것입니다.


저는 독서를 강의합니다. 부자에 대해서 강의합니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강의하죠.

전혀 다른 분야의 강의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귀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한 번뿐인 인생에서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세상을 이해),

부자에 대해 공부하고(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정의),

글을 쓰는 것(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입니다.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가진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삶과는 동떨어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99%의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좌절할 필요도 우쭐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의 방향을 정하고, 내가 가진 인생의 가치를 찾아서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의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시간들을 거쳐오며 자신이 원하는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은 것뿐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사유의 시선이 높아질수록 우리 삶도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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