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거품이 글을 가릴 때
좋은 글을 읽거나 쓸 때의 기분은 흡사 밧줄을 잡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듯 조금씩 생각이 붙잡고 가는 느낌입니다. 수월하진 않지만, 언덕하나를 넘을 때마다 묘한 희열을 맛봅니다.
반대로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집니다.
마치 욕조에 비누거품이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의 거품이 늘어나면서, 정작 뭘 써야 할지 보이지 않고 막막해집니다. 그럴 땐 가만히 작은 거품들이 하나씩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억지로 불어나는 생각을 다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죠. 언뜻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각에 거품만 끼었을 뿐 온전한 실체가 없는 것들뿐이니까요.
그 실체 없는 거품들이 다 가라앉아야 비로소 진짜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때론 황량한 모래사막 같은 마음이 보이기도 하고, 그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별 것 아닌 일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뜻밖에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 사람인지 깨닫기도 하고요. 물론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은 멈추게 될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동안 글을 거의 쓰지도 않았는데, 글쓰기 수업에서 실습할 때마다 술술 멋진 문장이 나오고, 내가 쓰고 싶은 책이 뚝딱 써지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겐 훨씬 더 많은 실패한 문장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에서 그런 것처럼.
다만 멈춰있는 차를 처음 미는 것처럼 처음에는 마냥 무겁다가도 계속 밀다보면 제법 수월해지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그렇다고 힘을 빼버리면 또 차는 멈추고 우리는 다시 힘껏 밀어야만 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적당한 힘으로 밀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 더 높은 단계에 올라와 있는 내 글을 만나게 될 겁니다.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발버둥 칠 때는 느끼기가 힘든데, 생각 없이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런 기쁨을 곧 만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늦은 밤 생각의 거품을 가라앉히며, 다시 이리저리 끄적인 노트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