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외모 첵! : 나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소중함

불편함이 나를 성장시킨다

by 변대원

만나면 불편한 사람이 있다.

만나자마자 나에게 잔소리를 쏟아내고, 왜 관리를 안 하냐고 혼내는 사람이다.

그분의 사무실 근처에 다른 일로 왔다가 굳이 연락해서 20분 남짓 만났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실컷 잔소리를 듣고 돌아왔다.


그 사람은 나의 이미지 코치님이다.

8년 전에 처음 만나 수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내가 정말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업을 들으며 살도 빼고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안경도 쓰게 되었다. 한 달 정도만에 사람들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만큼의 외적 변화가 있었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더 많은 자신감을 주었고, 내적인 성장만큼이나 외적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또 한 번 수업을 듣고 종종 함께 모임을 하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돌아보면 그동안 관리를 잘하던 시기도 있었고, 반대로 더 엉망일 때도 많았다. 그리고 엉망일 때면 어김없이 한 번씩 코치님을 만나곤 했다. 그리고 늘 팩트폭격을 당한다.

'피부관리를 안 하는 것 같다. 살이 더 찐 것 같다. 옷 스타일이 영 마음에 안 든다. 등등'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계속 듣고 온다. 나도 사람인지라 변명하고, 부끄러워하고, 심지어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이영지 씨가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이 너무 일찍 유명해지면서 연예인병에 걸릴 것 같아서 항상 자신에게 바른 소리 해주는 사람들을 가까이하면서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24살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현명함이다. 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불편함을 가까이 두려 애쓰고 있다. 만나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진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며 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늘 그렇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나는 생각이 긍정적인 편이어서 사람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는데 익숙한데, 그게 나에게는 허술한 자기관리의 빌미가 된다.

하여 불편함을 온전히 마주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그들은 나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나와 비슷하게 긍정적인 면들을 항상 더 크게 바라봐준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삶의 풍요로움을 느낀다. 반면에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은 나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다. 사소한 실수가 많고, 감정적이며, 낙천적이기 때문에 자주 놓치는 현실적 조언들을 던진다. 매우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나는 성장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성장의 동기는 대체로 불만족에 기인한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그 괴리감이 가상의 진공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에너지는 때론 성장으로 때론 방황으로 나를 이끈다. 불만족을 처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내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매달려있는 포도를 먹고 싶다면 키가 크던지, 점프력을 높이던지, 도구를 활용하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반면에 어차피 저 포도는 신 맛이 강해서 맛이 없을 거라 합리화하는 방법도 있다. 결국은 선택이다.


대체로 성숙한 사람일수록 타인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하다. 타인과 나 모두에게 엄격한 경우에는 '지만 잘났지'라는 소리를 듣기 쉽고, 타인과 나에게 모두 관대한 사람은 '그냥 맘 편히 사는 사람'이 된다. 나한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만 엄격한 사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비행기는 공기의 저항이 있기 때문에 이륙할 수 있다. 만약 공기의 저항이 없다면 비행기는 날 수 없다. 비행기가 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양력(lift)이라고 하는데, 양력이 중력보다 더 강할 때만 비행기는 날 수 있다. 이런 과학적 원리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아무런 저항이 없고, 어려움도 없고, 모든 일이 쉽게 쉽게만 풀리길 막연하게 바라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결코 그 삶이 원하는 높이까지 떠오를 수 없다.


어제는 저녁에 급한 일정이 생겨서 PT 수업을 3시간 앞당겨 받았다. 핑곗거리가 생겨서 운동을 안 가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굳이 일정을 바꾸어 10분 만에 헬스장으로 달려갔다. PT를 받으며 역시나 불편한 이야기들을 들어야만 했다. 내가 하기 힘든 동작들을 억지로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횟수를 했다. 이 불편함을 하나씩 이겨내는 과정으로 통해 내가 더 건강해질 거라는 걸 안다. 오늘 갑작스러운 외모 체크를 받으며 느꼈던 불편함이 내가 무의식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나의 외적 이미지를 조금 더 개선시킬 거라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글 역시 부족한 내 모습을 드러내는 불편함, 시간을 내어 글을 써야 하는 불편함을 마주하며 써 내려가고 있다. 불편함이 없는 성장은 없다. 여전히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내가 기꺼이 감당하는 저항의 크기가 결국 내가 떠오를 수 있는 삶의 높이임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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