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도 슬픈 그 날
8월 6일. 내 생일이다.
일년 어느 명절보다 기쁜 My Day.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어렷을적부터 나는 생일이 일년중에 제일 좋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생일은 여름방학 피크 중 피크!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때까지 내 생일이 방학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고3이었던 2003년, 방학도 없고 일요일도 없이 그렇게 매일같이 학교를 나갔지만 일년 중 딱 하루 쉬는 날이 내 생일이더라.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하하 호호 파티를 해본 적도, 카드와 선물을 받아 본 적도 참 드물었다. 그런데도 난 왜이리 내 생일이 좋았을까?
초등학교 2학년때, 엄마가 큰 마음 먹고 친구들을 불러 우리 집에서 파티를 열어주었던 적이 있다. 인생에 손에 꼽는 생일 파티이다. 나는 너무나도 신났다. 친구 열명정도가 우리 집에 와 주었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케잌도 불고, 선물도 받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생일 파티라는 걸 해 본 참 행복한 날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 거실 한켠에 남아있던 생일상을 보시고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하신다.
"왜 애들 생일상에 바나나를 샀어?"
"왜 뭐가 어때서?"
"거 바나나에 농약 엄청 많이 치는 거 몰라서 그래?"
바나나의 식용 안정성에 대해서 아빠의 강의가 펼쳐졌고, 고생해 차린 생일상에 딴지를 거신 아버지가 못마땅했던 엄마는 날카롭게
"뭐가 어때서 그래? 바나나가 뭐가 어때서"
라고 응대했었고, 그리고는 언성이 높아졌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깟 바나나 가지고, 내 생일 파티 날, 엄청 싸우셨다는 기억뿐.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왜 엄마아빠는 그 기분 좋은 날 싸웠어야 했을까.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생일파티는 이렇게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생일이 돌아올때 쯤, 항상 이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그 바나나가 생각이 난다. 바나나가 데체 뭔 잘못이냐.
고2때, 친구들이 서프라이즈로 반에서 조금 이른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 (그때도 내 생일은 방학이었기에...) 딸기 캐릭터 (기억 나는가?)가 유행이었는데 조그마한 탁상시계를 돈을 모아 사주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 시계를 버리지 못했다. 그 시계는 나와 함께 서울로, 오사카로, 그리고 미국 로스 엔젤레스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까지, 내가 가는 곳에 모두 함께 했다. 딸기 캐릭터가 파랗게 바랬는데도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 일생에 몇번 안되는 정말 기억에 남는 생일 축하받은 그 추억이 고마워서, 모두의 마음이 고마워서 였겠더라. 고장나지 않는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나서는, 생일이 돌아올 때 쯤 되면 자동으로 우울 모드가 된다. 왜인지 모르겠다. 아니, 너무 잘 안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걸 알기에, 엄마아빠 그리고 동생이 더욱 더 보고싶어 질 게 너무 뻔하니까. 20대 대학을 가서는 친구들이랑 노느라 내 청춘을 즐기느라 바뻤다면, 30대의 타국에서 맞이하는 생일은 매년이지만서도 가족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래서 생일 일주일 전이면 혼자 감정을 잡는다.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괜찮아 혜란아. 어짜피 (가족들) 못보는 거 너도 알잖아.'
'에잇, 생일이라고 별거 있니. 그냥 많은 날중에 하나일 뿐이지. 신경쓰지 마.'
8월이 오고 2일, 3일이 되면, 생일이 다가 온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 축하해 줄 사람이 얼마 안된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감. 너무나도 가난해서 어렷을 적 생일 케잌 한번 못 먹어본 남편에 대한 기대 반 포기 반의 심정, 무슨 무지개맛 모듬 캔디 처럼 내 기분도 이랬다 저랬다 난리가 아니다.
올해는 남편과 단둘이 캠핑을 가기로 했다. 사실 친구들을 몇명 초대 했지만 다들 못온단다. 내 생일엔 사람들이 항상 바쁘다. 다들 놀러갈 계획이 빡빡한 8월 초,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가. 30대가 넘어서 서른 대여섯번을 치렀는데도, 이 상실감은 어디 가질 않는다. 그나마 카톡이 있어서, 인터넷 전화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조그만 핸드폰 창 너머 엄마의 사랑과 할필요 없다는데도 해주는 걱정, 그 모든것이 전파를 타고 나의 몸에 전율처럼 느껴진다. 이럴 땐 정말 감정이 풍부한게 독인지 약인지 모르겠다.
괜히 샌치해져서 보낸 이번 주, 캠핑이 기대도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이눔의 남편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내 생일 내가 기획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기대하는 마음을 놓아야겠다. 결국 생일은 그냥 많은 날중에 하나일 뿐이지. 그래 그렇다고 하자.
생일 축하해! 난 너가 올 한해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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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5일, 내일이면 이 글을 쓴지 다시 일년이 지나고 내 생일이 돌아온다. 한국은 벌써 8월 6일, 이미 내 생일이다. 엄마와 비디오톡을 하고 아빠께서는 애플 워치를 사라고 30만원을 보내주셨다. 뭐 갖고싶은거 없냐고 하시길래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써주신다고 하셨으니 벌써부터 우체통에 한달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한달 전부터 뭐 할 거냐고 닥달을 했더니, 생일이 어색한 우리 남편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의 조촐한 자전거 데이트를 준비했다. 왁자지껄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지는 못하는 생일이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삼삼한 맛이 있다. 그래서 조금은 서글프지만 난 아직도 내 생일이 좋다. 38세, 건강을 위해서 올해는 나를 위해 짐 멤버십을 다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