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아름다운 아이러니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임윤찬 군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있다. 남편이 오랜만에 남정네들과 캠핑을 가서 이 넓은 집에 혼자 있는 고요한 주말이다.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에 가득했던 잡음들이 사라지면서 내 마음에는 잠깐의 평온이 찾아온다. 30분 남짓한 이 시간에는 생각을 텅 비우고 온전히 멜로디에 나를 맡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나의 인생에 신경 안정제가 되어있었다. 남편과 크게 싸우고 감정이 들쑥날쑥 엉망징창일 때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틀어 놓는다. 그 복잡하고 정교한 피아노소리에 넋을 잃다 보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잦아들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진다.
이따금씩 혼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보러 간다. 같이 갈 사람이 없을뿐더러 남편은 클래식의 ㅋ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그냥 혼자 간다. 데이비스 심포니 홀을 향해 걸어갈 때, 공연장 안에 들어갈 때의 그 설렘이 좋고, 큰 천장아래 파이프오르간 그리고 정갈히 놓여있는 의자들과 거대하기까지 보이는 그랜드 피아노는 언제나 내 마음을 웅장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 혼자 보내는 그 3시간 남짓한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온함이고 힐링의 시간이다. 무슨 작곡가의 무슨 곡인지는 사실상 중요하지도 않다. 전문가처럼 굴 생각은 아예 없다. 그저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화합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에 감탄할 뿐이다. 설명할 수 없는 장대함과 위대함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지휘자의 손 끝에 맞춰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실시간으로 창조하고 천명이 넘는 관객들과 호흡한다는 것은 감히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번 공연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집에서 듣는 것도 때론 도움이 되지만 말이다.
그러다 문득, 왜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참 애증의 관계이다. 전 피아노 편에서 말했 듯, 엄마에게 떠밀리다시피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접하게 되었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싫으면서 싫다고 말 못 하고 꾸역꾸역 피아노 학원을 다녔더랬다. 10년을 그리 보냈더니 클래식 음악이 그래도 내 인생에 손톱만 한 영향은 끼쳤나 보다. 특히 아주 어렸을 때 다닌 시온음악선교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은 무조건 음악감상하는 날이었다. 감상실에서 원장 선생님의 지루~한 설명과 함께 그 어린 꼬물이들이 30분도 넘는 음악을 조용히 앉아서 들었어야 했다. 그때는 비발디가 누구인지 모차르트가 누구인지,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 하면서 들었었다. 왜 여기 앉아 이 지루한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었지만 일주일에 그렇게 한 번씩, 고문처럼 앉아 음악을 들었더랬다. 그때 훈련이 됐나 보다. 이런 지루할 수 있는 음악을 자율적으로 내 돈 내고 들으러 가게 된 건 그 원장선생님 덕인가.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그렇게 자주 들었다고 하는데, 그 덕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강제로 피아노를 시킨 엄마가 미웠다. 피아노가 정말 싫었던 적도 있었다. 그만두고 나서 오히려 좋아진, 아니, 그리워진 피아노였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면 엄마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내 안에서 클래식 음악 = 엄마와 같은 공식이 있다. 엄마로 인해서 접하게 되었고, 어렸을 때는 싫었지만 커서는 좋아졌고 (엄마와 나의 관계처럼), 나를 처음으로 콘서트 홀 - 광주 문화예술회관 - 에 데려가 준 것도, 조수미와 정트리오, 하물며 조용필까지, 음악에 나를 끊임없이 노출시켜 주고 즐길 수 있게 해 준 건 엄마의 영향이 크다. 싫든 좋든 간에 나의 유년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한 이 음악이 이제는 다 큰 어른이인 나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꼭 이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피아노 연주를 보고나 듣고 있으면 어렸을 적이 생각난다는 뜻은 어렸을 때 겪었던 아픈 기억들도 떠오른 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때는 '난 왜 클래식을 좋아하지?'라는 자문을 하기도 한다. 너무 아픈 기억들도 연쇄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평화롭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 피아노에 앉아서 손가락을 맞았던 기억, 엄마의 큰 소리, 엄마의 발길질에 피아노 아래로 날라 굴러 떨어져서 머리를 찧었던 기억, 피아노 연습 안 한다고 혼내던 엄마. 그와 동시에 상기되는 좋았던 기억들, 행복했던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혼재되어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때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맘이 어지러울 때 클래식 음악이 확실하게 나에게 평온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좋았던 기억이 아팠던 힘들었던 기억을 이긴 게 아닐까, 엄마가 나를 배에 품었을 때 그때 피아노 협주곡이 가져다주었던 마음의 평온이 나에게 진하게 옮겨왔나 보다. 클래식음악과의 뒤틀린 애증의 관계는, 박 터지게 싸우고 더욱 돈독해진 베스트 프렌드 같은 그렇게 내 삶의 반려자가 되었다.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싫었던 슬펐던 기억들도,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도, 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자양분이리라. 내게 남은 반평생은 클래식 음악과 천천히 여유 있게 같이 걸어가는 그런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