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by 란이랑

도대체 얼마나 불러 댔길래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개똥벌레 이야기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분들은 나를 보면 항상 어김없이

"란이가 참~ 어렸을 적에 개똥벌레를 그렇게 잘 불렀었는데"

하신다. 한두 분만 말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 똑같으니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의아했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서네살때의 나는 한동안 이 노래에 완전히 꽃혀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쩌~얼 수 없네~� 저기~ 개 똥 무~덤이~ 내~ 집인 걸~"


장소 시간 불문하고 네 살짜리 꼬맹이가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목청 높게 뽑아대니 그게 그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혔나 보다. 살면서 많은 노래를 만났지만 이 노래는 뭔가 내 혈관 안에 흐르고 있는 피처럼 온몸에 내재되었있다. 이 괴이하면서도 구슬픈 가사는 절대 죽을 때까지 까먹지도 않을 것 같다. 불쌍한 개똥벌레,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대.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1987년, 내가 3살 때 발매 돼서 MBC 아름다운 노래대상 금상과 초대 한국 노랫말 대상의 대상씩이나 수상했다니, 내가 주야장천 불렀다는 4살 때가 얼추 말이 된다.


어렸을 적 앨범을 보면 유난히 마이크를 들거나 헤드폰을 쓴 사진이 많다. 이 노래를 노래하고 있는 그 순간을 놓치고 찍어낸 사진도 꽤 된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엄마와 포크송 팝송을 섭렵한 전직 레코드 가게 사장님의 딸이니 그럴 만도 하다. 개똥벌레가 내 3세~4세 때 최고의 노래였 듯이 그다음부터 나는 모든 가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나의 유아기 최애 시청 프로그램은 가요 톱 10! (엠카, 인기가요 이런 것도 훨씬 전에는 가요톱텐만이 인기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었다. 요즘 MZ들은 모르겠지만) 수요일밤 8시만 되면 티브이 앞에 붙어 한 시간 내내 춤추고 노래하며 누가 이번에 1위를 하나 궁금해 했다. 가요 대상을 현철선생님이 받은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언제였나 찾아보니 89년이나 90년이었겠더라.


개똥벌레를 졸업하고 나는 격변의 90년대 가요시장과 함께 자랐다. 현철 선생님을 필두로 한 OG 가수분들부터 만남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사연 이모가 사는 게 무엇인지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무송 아저씨랑 결혼을 하고, 조용필 선생님의 전곡을 엄마아빠께 사사하고, 신승훈의 로미오! 에 환호하고, 때때마다 나오는 유행가는 전부 다 섭렵하며 자랐다. 덕분에 80년대 후반부터 나의 가요 역사는 2023년 지금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부활, 이승환, R.ef. 잼, 노이즈, 쿨, 룰라, 클론, 한 시대를 휩쓸었던 여성 디바들 - 엄정화, 박미경, 백지영이정현-, 김건모의 밀리언셀러 잘못된 만남, 고향 출신 롹커 김경호, 언니 세대들을 크레이지 하게 만들었던 문화대통령 서태지, 그리고 나의 뮤즈, 에쵸티*를 만나기까지 정말 많고 다양한 음악을 듣고 부르면서 자랐다. 가요를 듣고 즐기는 것이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의 분출구이자 취미였던 것 같다. 내 인생 첫 직관 콘서트 (가수)가 조용필이다. 아버지 취향에 따라간 거였지만 그때도 우리 바운스 선생님은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셨다.


(*에쵸티이후의 가요계 이야기는 할 말이 많으니 따로 글을 쓰기로 하겠다.)


그 수많은 유행가들을 지나 30여 년의 가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홈베이스는 항상 개똥벌레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개똥벌레처럼 입에 착 붙는 노래가 없다. 기억도 못하지만 아마 몇백 번이고 큰 소리를 내서 불렀기 때문인가 보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때 레크리에이션을 하면 꼭 등장하는 이 노래, 정말 부르기가 쉽고 율동까지 하다 보면 슬픈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어깨춤이 저절로 춰진다. 쉬운 가락과 가사에 목청을 높여 부르다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도 든다.


이런 기분을 요즘 애들은 어떤 곡에서 느낄까? 뉴진스의 슈퍼 샤이? 르세라핌의 I AM? 세대가 X에서 밀레니엄으로 또 MZ로 바뀌고 세대별로 사랑하는 곡들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겠지. 누군가에게는 원더걸스의 텔미가, BTS의 피땀눈물이 그런 인생곡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새삼 내 나이가 쑥스러워진다. 아니, 솔. 직. 히. 나는 개똥벌레 세대는 아니지만 가요에 좀 눈을 일찍 뜬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솔직히 내 친구들 중에 현철이 89년에 가요 대상 탄 거 기억할 아이는 없을 것 같다. 대~충 H.O.T의 캔디라고 바꾸련다.


이렇게 애틋한 노래인데도 참 안 불러본지가 오래 됐다. 수련회 갈 나이는 아니니, 부를 일이 없지. 글을 쓰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그 멜로디, 밤이 늦었으니 내일 한번 크게 소리 내서 불러보아야겠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개똥벌레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거나 율동이 떠오른다면 반가워요. 우리 친구 해요 ㅋㅋ

작가의 이전글새우 까주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