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강렬한 스침, 섹스보다 더 야했던.

by 란이랑

신타로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명석한 두뇌, 날카로운 눈썹, 자욱한 담배연기, 세상의 모든걸 알고 있는 듯히 툭툭 숨 쉬듯 내뱉던 그의 철학까지. 달변인데다가 창의적이고 통찰력까지 갖춘 다재다능한 그의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따랐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조차도 그의 알수없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사랑은 아니었다. 인간대 인간의 호기심에 가까운 그 감정은 나를 그의 주위에 맴돌게 했다. 간혹가다 둘이 대화의 기회가 있을때면 인생이니, 연애니, 우리 사회와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의 감정은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아 나에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수는 없었지만, 곧잘 통하던 우리는 딥한 이야기도 서스름없이 나눌 수 있는 그렇게 쿨한 남사친 여사친이 되었다.


그는 입학한지 얼마 되지않아 동급생중에서도 예쁘기로 소문난 여자애와 CC가 되었고, 6개월도 안 되어 그 연애를 마치고는 많이 힘들어 했다. 하지만 솔로가 된 그녀석은 여전히 쿨했고, 나는 나같은 언더도그가 그와 가끔 인생을 논하는 대화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 당시 나는 과에서 거의 유일한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자존감도 떨어져 있었고 친구들이 나를 어디에 껴준다는 것 자체를 감사하다고 여길정도였다.)


대학교 3학년 때였을까, 열댓명정도 대학 동기들끼리 주말에 나가노로 스키 여행을 가기로 했다. MT도 딱히 없는 일본 대학에서, 이 나가노에서의 스키 여행은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금요일 저녁에 오사카에서 나고야까지 장장 450Km의 거리를 야간 버스를 타고 새벽을 쉬지않고 달려서 도착한 뒤, 스키를 이틀 내내 타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야간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1박 3일의 가혹한 여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였으니까 가능했던 몸을 혹사하는 스케쥴이었다.


저녁 10시쯤 다들 터미널에 모여 우리 그룹은 차례차례 버스에 올라 탔다.


"오 란짱, 내가 여기 앉아도 될까?" 먼저 앉은 나의 빈 옆자리를 보고, 다 짝을 맞춰 앉은 다른 친구들을 보고 신타로가 내 옆자리에 가방을 털썩 놓았다. 은근히 기뻤지만 티를 내지않고 그래 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그렇게 우리는 새벽내내 옆에 앉아 가게 되었다. 버스는 11시가 다되어 출발하였다. 우리는 왁자지껄 떠들다가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였다. 버스는 동이 트고 나서야 나가노에 도착할 것이고, 우리나라 일반버스정도 밖에 안되는 꽉찬 버스에서 우리는 어떻게라도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 스키를 타기 위해서는.


젠장, 신타로의 어깨가 내 어깨와 딱 맏붙어 있었다.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좌석이 좁은 턱에 그와의 육체적인 거리는 사뭇 가까웠다. 그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불편했지만 결코 싫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어깨와 어깨를 맡닿은 채 잠을 청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그의 온기가 내 어깨를 타고 전해왔다. 잠을 자려고 뒤척여봤지만 도망갈 곳이 없었다. 어깨를 닿지 않으려고 최대한 창가쪽으로 내 몸을 움직여 본다. 하지만 그의 다리, 손, 어깨, 그 모든 것이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웠다. 혈기 왕성한 20대 초반의 남녀가 이 정도 거리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6시간을 같이 있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덜컥 손이라도 잡고 싶었다. 나의 왼쪽 허벅지와 그의 오른쪽 허벅지는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그도 우리의 맡닿음이 어색하고 불편했는지 몸을 꿈틀거렸다. 서로의 접촉을 느낄 수 없는 편한 자세를 찾아보려 둘 다 부단히 움직였다. 몇시간째, 나는 그가 나랑 똑같이 잠을 청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세시간정도 지났을까, 버스는 고요한 고속도로를 몇시간째 질주 하고 있었다. 뒤척이다가 지쳐 너무 잠이 와서 비몽사몽 해지니 이 두근거림이 귀찮고 성가셔졌다. 젠장, 그가 옆에 앉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나는 골아 떨어졌을텐데. 하필이면 그가 내 옆에 앉는 바람에 잠이라는 건 물 건너 갔다. 그도 피차 일반이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어깨를 맡닿은 채 6시간을 자는 척 하며 지샜다.


어느샌가 우리 둘의 어깨와 다리는 이상할 만큼 닿아 있었다. 잠이 들지 못해 피곤했지만 그 이상한 설레임을 언젠가부터 즐기고 있었다. 가슴이 뛰고 몸이 뜨거워졌다. 그도 싫지 않은지 굳이 몸을 떼어 내려 하지 않았다. 차라리 드라마의 남주 여주처럼 서로 달려들어서 키스를 하고 무언가 액션을 취하는 것 보다 이 Subtle한 접촉이 10배는 더 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신타로와 나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나가노에 도착했다.




첫날 생애 처음으로 스노보드에 도전했다가, 엉덩이가 깨질 듯한 아픔을 경험하고 이건 안되겠다 싶어 바로 스키로 전향했다. 나가노의 파우더같이 부드러운 자연설을 가로 지르며 활강하는 그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스키를 타고 엄청나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천을 한 뒤 우리는 다시 야간 버스에 올랐다.


온 몸이 멍이라도 든 듯 몸 전체가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온천탕이 없었다면 아마 상태는 더 안좋았을 것이다. 극도의 피로감을 앉고 다시 6시간 발도 뻗지 못하는 버스에서 다시 이 긴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버스에 들어서자마자 신타로와 나는 복도를 가운데 두고 노아의 기적처럼 반대쪽으로 나눠 앉았다. 더 이상의 두근거림이나 신체적 자극은 우리에게는 필요 없었다. 오직 버스 안에서 잠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음을 바랄 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누구와 같이 앉았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나는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바로 골아떨어졌다. 모든 친구들이 다 그랬다. 그 주말, 우리는 우리의 20대의 팔팔함을 불태웠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졸업을 했고, 신타로는 동경의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나는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 더 이상 우리는 서로를 볼일이 없어졌다. 동경에 갈 일이 생겨서 그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보았다. 그는 흔쾌히 자기 집에서 하룻밤 묵어도 된다고 나를 초대했다. 회사에서 제공된 동경 한가운데 위치한 고층 아파트였다. 가난한 사회 초년생에게 공짜 숙식이라니,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좁지는 않은 집이었지만 침대는 하나뿐이었고, 그날 밤 그렇게 우리는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그가 출근을 할 때가 되었다. 나보고 편히 쉬라며 아파트를 내어 주고 나갔다. 너무나도 궁금했던 그의 사생활을 차근차근 내 눈에 담았다. 혼자서 천천히 그의 아파트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탐구했다. 내가 마치 미스테리 소설의 주인공의 집에 초대되어 단서를 찾아야 하는 탐정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궁금했던, 알고 싶었던, 열망했던 그의 아지트에 나만 혼자 있었다.


그날 밤에 있었던 일과, 내가 찾은 단서들은 나만 간직하고 있는 걸로 하겠다. 신타로라는 인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대학 4년간 계속 되었고, 그리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 4년동안 나는 남자친구도 몇번이 바뀌었고, 그와 연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원해보지도 않았다. 그는 뭔가 내가 근접할 수 없는 이상의 존재였고, 사랑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강렬하게 원했었다. 그 날의 어깨에 닿았던 감촉, 나와 그의 심장소리, 뒤척거림은 인생에서 몇번 맛보지 못한 극강의 쾌락에 근접했다. 육체적인 끌림이었을까, 아니면 한 인간을 알고싶은 나의 강렬한 소망이었을까.


아직도 그의 소식이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그 흔한 소셜미디어도 안하는 그의 프로필을 가끔씩 뒤져본다. 살은 좀 쪘지만 그의 강렬했던 눈썹은 여전하다. 복잡하고 신비스러웠던 그 소년은 지금쯤 어떤 성인이 되어있을까. 그에게 그 날의 그 버스를 기억하는지 물어보고싶다.

작가의 이전글개똥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