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걸었다.
발바닥이 땅의 결을 외우듯, 무심한 흙길의 숨결이 내 안으로 스며들 때까지, 나는 방향도 목적도 잊은 채 그저 전진이라는 동작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점점 생각을 닮아가, 의미 없이 이어지면서도 묘하게 집요했고, 어느 순간 나는 길 위가 아니라 시간 위를 걷고 있다는 착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낡은 돌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듯 이어진 다리 위에 이르렀다. 물은 그 아래에서, 오래된 비밀을 숨긴 채 낮게 웅얼거리고 있었고, 다리는 그 위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삐걱거리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얀 번개처럼, 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으나 이제야 나의 시야에 허락된 존재처럼, 한 마리 토끼가 시야를 가로질렀다. 그것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시간의 파편을 움켜쥔 채 달아나는 도주자 같았고, 현실의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 균열의 화신 같았다.
그 놈의 입에는, 빛을 삼킨 듯 은근히 번뜩이는 작은 열쇠가 물려 있었다.
쇠붙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차갑기보다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고, 마치 열쇠가 토끼를 물고 있는 것인지, 토끼가 열쇠를 물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둘은 기묘하게 결속되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저것을 놓치면 안 된다.
저 열쇠는 단순히 어떤 문을 여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잊어버린 무언가—어쩌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입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뛰었다.
숨이 찢어질 듯 갈라지고,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며 탈출을 시도하는 와중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토끼는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라, 공간을 건너뛰듯 움직였다. 한 번 도약할 때마다 거리의 개념이 왜곡되었고, 나는 그 뒤를 쫓으며 점점 현실의 규칙이 무너지는 감각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뛰고 또 뛰었다.
시간은 늘어졌다가 접히고, 풍경은 뒤틀렸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더 이상 쫓는 자인지, 쫓기는 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손끝이 그 하얀 털에 닿았다.
숨을 삼킬 틈도 없이, 나는 토끼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따뜻했고,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무게가 없었다. 손 안에서 꿈처럼 흐물거리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매달린 존재 같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 입을 벌렸다.
작고 단단한 턱을 힘으로 벌려, 그 안에 숨겨진 열쇠를 끄집어내려 했다. 그 순간, 토끼의 눈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은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질문처럼 깊고, 이해할 수 없는 비웃음처럼 얕았다.
그리고—
찰나였다.
날카로운 통증이 손을 관통했다. 토끼의 이빨이 내 살을 파고들며, 단순한 고통을 넘어선 어떤 경고를 새겨 넣었다. 그것은 마치 “여기까지다”라고 말하는 듯한, 세계의 경계선 자체가 나를 밀어내는 감각이었다.
나는 비명을 삼키듯 몸을 떨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돌다리는 물로 풀어지고, 물은 공기로 흩어지고, 토끼는 빛으로 찢어지며, 열쇠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감각들은 서로의 자리를 빼앗으며 뒤엉켰고, 나는 그 혼돈 속에서 단 하나의 사실만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손에는 상처도, 열쇠도, 토끼의 체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심장만이 여전히 도망치듯 뛰고 있었고, 손끝에는 분명히 있었어야 할 무언가의 부재가 서늘하게 맴돌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끝내 잡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잡힐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했던 것임을.
그리고 그 열쇠는, 어쩌면 아직도 어딘가에서—내가 다시 잠들기를 기다리며—누군가의 입에 물려 달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