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저장하기 전, 너는 다만 스쳐 지나가는 숫자였고, 아무 의미도 없이 흘러가던 파편에 지나지 않았으나, 나는 어느 순간 그 무정한 배열에 이름을 붙여주고 말았다. 그 이름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불리기를 기다리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한 번의 진동이 가슴을 건드리고, 한 번의 희미한 빛이 밤의 어둠 속에서 나를 불러 세우면, 나는 마치 구름 사이로 밀려오는 달빛을 바라보듯 화면을 켜고, 그 속에서 너를 찾는다. 꺼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나 켜지는 순간 나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이 얄팍한 빛 위에서, 너는 점점 더 또렷한 형체를 얻어 갔다.
나는 너의 이름을 불렀고, 그 부름은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떼어 건네는 일이었으므로, 너는 더 이상 기호가 아니게 되었고, 나의 하루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별을 헤듯 쌓여가는 메시지들, 읽히지 않은 채 남겨진 문장들, 끝내 보내지 못한 말들이 밤하늘처럼 켜켜이 쌓이며,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더듬어 올라간다. 위로, 더 위로, 끝도 없이 밀려나는 기록 속에서 나는 너를 찾고, 동시에 나를 잃는다. 별 하나에 기억을 담고, 별 하나에 그리움을 얹듯, 나는 알림 하나에 하루를 걸고, 알림 하나에 무너진다.
지금은 모든 연결이 끊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태임에도, 기묘하게도 너는 여전히 접속 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이미 떠난 사람이 아직도 문턱 어딘가에 서 있는 것처럼, 네가 남긴 마지막 말은 지워지지 않는 잔향으로 남아 나를 붙잡는다. 말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바람이 스치듯 떠나버린 자리에는 아무런 소리도 남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더 크게 울려 퍼진다. 나는 알림이 울리지 않는 밤에도 귀를 기울이고, 오지 않을 신호를 기다리며, 이미 끝난 연결 위에 다시금 손을 얹는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것은, 그것이 단지 너의 흔적이 아니라 그 속에 스며든 나의 시간과 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지우려는 손끝은 번번이 멈추고, 삭제 버튼 앞에서 나는 오래된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는 사람처럼 서성인다. 과연 무엇이 너이고 무엇이 나인가. 이 수많은 기록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은 어느 쪽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 발 늦게 도착하는 메아리처럼 흐릿하다.
푸른 불빛 아래에서 나는 나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그것은 어느새 낯설어진 표정이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조차 어색해진 시간의 결과물이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다는 오래된 다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나는 오늘도 보내지 못한 문장 하나를 가슴속에 접어둔 채 잠에 들고 만다. 말해지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기록 위에 새로운 계절이 덮여온다 해도, 봄이 와서 오래된 눈을 밀어내듯 다른 이름들이 이 자리를 채운다 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무엇이 남을 것이다. 그것은 캐시처럼, 혹은 돌에 스며든 금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흔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수많은 이름들이 다시 불리고 지워진다 해도, 한 번 불린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아주 가끔은,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 부름이 허공 속으로 흩어져 닿지 않는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너는 다시 한 번 나에게로 와,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