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트레스 아카이브(Stress Archive) 01
(Stress Archive)
01
비이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의 구별
"나 이직할 거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 N은 대뜸 이직에 대한 의사를 밝혔다. 입사 초기만 해도 연봉과 복지가 만족스럽다며 활기찬 눈빛을 띠었던 그녀였기에 의외의 발언이었다. 그녀가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하나였다.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 즉 과도한 업무량. 직장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흔한 원인 중 하나였기에 다른 지인이었다면 그녀의 의사를 두말 않고 지지했겠지만, 나는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겨우 4개월 차 따끈따끈한 신입인 나는 입사 첫 달 60시간이 넘는 초과 근무를 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법으로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었지만 미숙한 손놀림과 이해도로 인해 그에 준하는 시간을 추가로 일하지 않으면 주어진 업무량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놀라운 사실 중 몇 가지는 신입이라 업무량이 적은 편이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90시간을 웃도는 야근을 했다는 것이었다.
4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이 나아졌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력이 오를수록 업무량도 그에 비례하듯 늘어났고, 결과적으로는 매달 비슷한 정도로 야근을 하게 되었다. 정상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대학생 시절 과제 마감을 위해 야간작업을 밥 먹듯이 하던 나였기에 지금의 직장 생활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단지 비이상적인 상황이라고만 여겼다.
누구나 이상적인 직장 생활을 꿈꾼다. 정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풍족하지는 못하더라도 부족하지 않은 월급을 받고, 균형 잡힌 워라밸을 유지하는 것.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이상일뿐이므로 사회생활은 바라는 대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나의 직장 생활을 단순히 비이상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며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N에게 크게 공감하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공감과는 별개로 그녀의 발언은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직장인으로서의 내 삶은 비이상적인 것일까, 아니면 비정상적인 것일까?'
두 단어의 정의는 명백히 다르다. 비이상적인 것은 이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로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뚜렷이 구별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두 단어의 의미를 나누어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근무 시간을 단 한 번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해서 N의 결심처럼 이직이 백 프로 맞는 해결책인 것은 아니다. 비이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분 지었다면 그다음 단계에서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지는 이직, 혹은 현실에 대한 외면이 될 수도 있으며, 과도한 업무 시간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성취감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일 수도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선택은 순전히 제 몫이다.
비정상적인 나의 직장 생활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4개월 차 신입인 나는 직면한 문제에 대한 답을 정의 내리기엔 아직 어리석다. 그러나 한 번 피어난 현 직장 생활에 대한 의문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머지않아 내게 적합한 선택을 찾게 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 하나 없다고, 가방 깊숙한 곳에 사직서 하나쯤은 숨겨놔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