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트레스 아카이브(Stress Archive) 02
(Stress Archive)
02
후회와 반복의 딜레마
별명은 외모나 성격 등 지니고 있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흔히들 그런 것처럼 고등학교 시절 나의 별명 또한 나의 특징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의 대화 습관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유난히 상처를 잘 받는 성격 탓에 방어본능이 남들보다 조금 강했던 나는 방어수단으로 욕을 택했다. 대화 중 빈번히 욕설을 뱉는 것을 물론이었고, 누군가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는커녕 데면데면하기 바빴었다. (솔직히 데면데면했다는 것도 순화된 표현이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용케 내 속마음을 알아차리곤 단 한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리타는 말만 세게 하는 거지 절대 그런 애가 아니야'라며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곤 했다. 이 점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문제는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그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생겨 욕을 쓰던 버릇은 꽤 많이 고쳤지만,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소리 내 따라 하고, 마음을 곱게 다스려보기도 했지만 진전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 버릇은 누군가로 인해 화가 났을 때 굉장히 심해지곤 했는데, 불행히도 얼마 전 이것으로 인해 사건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당시 나는 친구 H의 뜻하지 않은 실수로 인해 H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을 가득 품고 있었다. 치기 어린 자존심에 이미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다 해 보였기에 비록 네가 사과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이만큼 화가 났다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짜증은 그 사건 이후 H을 만났을 때 은연중 나의 습관을 불러일으켰다.
H와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내 생일 전날이었다. 고맙게도 그 사실을 기억해 줬던 H는 나에게 '내일 생일이지? 축하해'라는 예쁜 인사를 건네왔었는데, 나의 대답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네가 뭔데."
스스로도 굉장히 놀랬지만 말을 이미 뱉은 상태였고, 그로 인한 뜻하지 정적에 사과가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을 보이던 H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 후로 며칠 뒤 H와의 통화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말 이외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대답조차 않는 등 허용될 수 없는 언행을 보였다는 것, 그리고 내색은 않았지만 나로 인해 H가 꽤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장착했던 나의 방어 본능이 우습게도 타인에게 상처를 준 꼴이었다.
살아가면서 적절한 방어기제는 필요하다.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끝없는 고립만이 존재할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수단이 타인에게 해를 가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택한 것이라면 타인도 지킬 줄 알아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냉담한 언행'과 '욕설'이라는 나의 방어기제는 인정받을 수 없고,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오래된 습관은 고치기 쉽지 않다. 나의 습관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방치할 뿐이라면 결국 끝없는 후회와 반복의 딜레마 속에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 오랜 생각 끝에 이러한 판단에 도달하고서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후회와 반복의 딜레마로 추락하게끔 자초하게 만들 것이다.
사실 오랜 습관은 충분히 익숙해진 만큼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방어기제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은연중 타인에게 해를 가했더라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지닌 버릇, 혹은 방어수단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때는 깊은 생각과 고민을 거쳐 판단으로까지 나아가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