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트레스 아카이브(Stress Archive)
(Stress Archive)
03
소홀함을 위한 답
입사 이후 생긴 버릇 중 하나는 퇴근 이후에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일하는 내내 울리는 알람에 질려 온전히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는 시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벨 소리만큼은 항상 켜놓기 때문에(퇴근 이후에도 대표님께서 종종 전화를 하시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전화를 걸어올 땐 곧잘 받는 편이지만 요즘처럼 SNS를 비롯한 각종 메신저가 발달한 시대에선 의미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는 근무 시간에만 반짝하고 나타나는 전설의 포켓몬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J로부터 쓴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용인즉슨 '회사 생활이 힘든 건 이해하지만 연락이 너무 안되니까 솔직히 서운해. 내가 너한테 그 정도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싶어서 정말 많이 상처받은 거 알아?'라는 것이었다. 서운함을 토로한 J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 당시 한껏 예민했던 나는 되려 그의 말에 토를 달고 말았다.
"너는 사람들이랑 소통하면서 에너지를 얻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온전한 내 시간이 있어야 회복해서 다시 일하고 너도 만날 수 있는 거라고."
아주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그것도 충분하게 가졌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편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일처럼 여겨 꺼린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J처럼 사람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 아닐 뿐이었다.
하지만 서운함을 토로한 것은 J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내게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그때마다 나는 남들과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 다를 뿐임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며 그들에게 애정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할 수 있는 한 나의 관심을 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강렬함보다 잔잔하더라도 지속적인 연락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엔 버릇을 고쳐보고자 퇴근 이후에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선 틈틈이 답장을 하고 연락을 했다. 우리 사이의 끈이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문제는 그로 인해 내 시간이 죄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 당연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었고, 스스로 점점 지쳐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끝내 신체적 피로는 정신적인 피로로 까지 이어져, 그렇지 않아도 회사생활로 인해 예민해진 자신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
나로 인해 소홀함을 느꼈다던 가족 그리고 친구를 위해 내린 선택은 분명 전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위한 시간에는 더 소홀해지게 되었다. 어쩌다 적절한 균형을 맞춘다고 하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으로 얻은 에너지를 관계를 위해 쏟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제로였다.
수많은 생각을 거쳐도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만 결론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어느 한쪽이라도 잃는 것이 두려웠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이러니 답이 없을 수밖에'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명쾌한 해결책을 알려줬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