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트레스 아카이브(Stress Archive)
(Stress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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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와 반면교사(反面敎師)
애석하게도 나의 기억력은 그리 썩 좋지 못하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건 흔한 일이었고, 불과 몇 시간 전 내가 뱉은 말도 잘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와 같이 기억력이 썩 좋지 못 한 사람들의 고충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건망증이 자의로 인한 것이든 타의로 인한 것이든 그것이 주는 일상 속 지장은 꽤나 곤욕스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망증 유형이 있는데, 바로 상사의 '리타씨가 언제 나한테 그 내용을 전달했죠?' 되시겠다.
비단 현재 직장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 전 1년간 학사조교로 근무를 했을 때도, 대학 시절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그랬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상사가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이를 먹다 보면 기억을 담당하는 곳의 기능이 차츰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 직급이 올라가다 보면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저장해놓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인정하기에 토를 달고픈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럼에도 금붕어라는 별명이 무색한 상사의 기억력이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온 이유는 단순히 기억력에 대한 문제가 아닌 부하 직원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 탓이었다.
부장님, 말씀드렸던 내용 확인하셨나요?
그게 무슨 소리지? 리타씨가 나한테 전달한 게 있었나?
네? 월요일 오후 4시경에 처음 전달드렸고, 어제도 한 번 더 말씀드렸었습니다. 혹시 몰라 메모도 드렸었습니다만...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모르는 척하며 잡아떼기. 그리고 사태가 심각하면 남 탓하기. 하나같이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남 탓을 시전하는 상사의 태도는 억울함을 불러일으킨다.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 태도는 쉽사리 바뀌지 않으며, 사과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가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는 상사도 있었지만, 자신의 언행에 진심으로 사과를 하긴커녕 '나이를 먹으니 자주 깜빡깜빡해'라며 흐지부지 말을 흐리기 일쑤였다. 덕분에 해소되지 못 한 나의 억울함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심한 경우 나라는 사람의 능력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또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은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안타깝게도 그때 추락한 자존감은 다시 끌어올리기가 사뭇 어렵다.
반면교사(反面敎師)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
오랜 기간 동안 고착화된 상사의 태도를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직장 내 관계에서 각자의 잘못을 제때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 수 있으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시도하면 그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엄두가 나질 않는 것도 맞다.
그래서 나는 상사의 변화를 바라기 보다는 그들의 잘못된 언행을 반면교사 삼기로 결심했다. 내가 보인 과거의 행적들과 현재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하며 그들처럼 행동하진 않았는지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 조심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 생활에서 직면한 문제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 상사가 지닌 금붕어보다 못한 태도를 나만큼은 배우거나 흉내 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면, 훗날 나 자신이 누군가의 상사가 되었을 땐 이러한 피해가 없지 않을까?
* 해당 글은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내용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