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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Graph Aug 17. 2015

소월은 사랑이다

일상문학 열 번째




문학 작품이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함을 강조했던 아도르노의 말을 생각해보자면, 우리의 문학 교육은 정말 뿌리부터 한참이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쪽으로만 문학을 보는 눈을 가르치고, 그걸 점수로 매기는 교육은 지금이 아니라, 먼 훗날 정말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무서운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학창시절 배웠던 작가들을 더 멀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작가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자유시 서정시, 조국을 위한 마음 등등 더러운 부산물들이 분명 떠올라 방해할 것 같아서요.




하지만 얼마 전 들린, 대학로의 한 작은 서점에서 김소월의 시집을 단돈 3800원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건대 분명, 이 3800원이라는 가격이 아니었다면 저는 소월의 시집을 집어들지 못했을 겁니다. 주황색의 작은 문고판 책이 이 책을 읽을 부담감을 덜어주기도 했고 말이죠. 어쩌면 소월에게 내어줄 수 있는 자리는 제 마음속에서 겨우 3800원이었던 셈이죠.



시인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이야기해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는 시인의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워즈워스는 자연, 자연을 관망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있고, 코울리지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읽은 소월의 시집에서 저는

소월의 자리는 '사랑'임을 느꼈습니다.



학창시절 배웠듯, 그의 대표적인 시 <진달래 꽃>에서 보이는 여인의 사랑만이 아니라,

정말 많은 것을 사랑했던 시인임을 알게 되었달까요.


사랑하는 임

그리고 그 님에 대한 그리움

마음속 설움의 덩이


이 모든 것을 사랑한 시인이었구나.



그는 분노하거나, 한을 품거나, 그저 관조하거나 혹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사랑했던 시인이었구나.




그의 시를 빌어 표현해보자면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설움의 덩이


꿇어앉아 올리는 향로의 향불.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초닷새 달 그늘에 빗물이 운다.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매일 쓰는 '덩이'라는 단어가 생경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작게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라더군요.

작은 기억들이 모여서 조그만 설움의 덩이, '덩이'라는 표현이 설움의 무게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불운에 우는 그대여


불운에 우는 그대여, 나는 아노라

무엇이 그대의 불운을 지었는지도,

부는 바람에 날려,

밀물에 흘러,

굳어진 그대의 가슴속도.

모두 지나간 나의 일이면.

다시금 또 다시금

적황의 포말은 북고여라, 그대 가슴속의.

암청의 이끼여, 거칠은 바위

치는 물가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품임을 알면서도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있죠. 하지만 살아가는 이상 적황의 포말은 계속해서 북고일 겁니다. 계속해서 몰려와서 거품을 일으키겠죠. 내 마음속의 바다에 맞서는 거친 바위, 적황의 포말과 만나 생기는 암청의 이끼.





생의 감격


깨어 누운 아침의

소리없는 잠자리

무슨 일로 눈물이

새암 솟듯 하오리.


못 잊어서 함이랴

그 대답은 '아니다'

아수여움 있느냐

그 대답도 '아니다'


그리하면 그 눈물

아무 탓도 없느냐

그러하다 잠자코

그마만큼 알리라.


실틈 만한 틈마다

새어 드는 첫별아

내 어릴 적 심정을

네가 지고 왔느냐.


하염없는 이 눈물

까닭 모를 이 눈물

깨어 누운 자리를

사무치는 이 눈물.


당정할손 삶은

어여쁠손 밝음은

항상 함께 있고자

내가 사는 반백 년.


소월은 사랑이 넘치는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시는 다시금 이 세상에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은 그의 말처럼, '당정할손 삶은/ 어여쁠손 밝음은'되뇌며 삶의 당정함(다정함)과 밝음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안의 설움도, 나에게 닥쳐온 불운도 어떻게 보면 안쓰럽고, 내가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일 테니 말입니다.





일상문학 숙제


1. 소월의 시를 읽어보자

2.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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