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ge Graph Sep 07. 2015

Words : 단어들

일상문학 열두 번째





단어는 참 묘합니다. 

특히 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을 예로 들어볼까요?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ㅅ ㅏ ㄹ ㅏ ㅇ으로 이루어진 낙서 같은 것(?) 일 뿐이죠. 

우리야 이 단어를 '사랑'이라고 읽겠지만, 러시아인에게 이 단어를 보여주면 이 단어가 그림인지 문자인지도 모를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ㅅ ㅏ ㄹ ㅏ ㅇ 보다 더 많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첫사랑이 생각날 수도 있겠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금 내 옆에 잠들어있는 인생의 동반자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커플지옥 솔로천국'이 먼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뿐일까요?


'사랑'이라는 단어는 기억도 끌어모읍니다. 

처음 좋아했던 친구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괴롭혔던 기억,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기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함께 사랑해주었던 기억,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기억 등 

수많은 기억들이 '사랑'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갈 겁니다. 


오늘 우리는 이 단어, 더 나아가 말의 마법을 잘 보여주는 시 한편을 만나볼 겁니다.

영시이지만 매우 쉽고, 재미있습니다. 







Words

by John Hay


When violets were springing
And sunshine filled the day,
And happy birds were singing
The praises of the May,
A word came to me, blighting
The beauty of the scene,
And in my heart was winter,
Though all the trees were green.

Now down the blast go sailing
The dead leaves, brown and sere;
The forests are bewailing
The dying of the year;
A word comes to me, lighting
With rapture all the air,
And in my heart is summer,
Though all the trees are bare.




-violet : 제비꽃

-springing : 피어나다

-blighting : 망치다 

-sere : 말라빠진

-blast : 한 바탕 부는 바람

-bewailing : 슬퍼하다

-rapture : 환희

-bare : 벌거벗은 



어렵지 않으셨을 거예요. 읽고 나면 머릿속에 무언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봄에, 

5월의 봄날을 지저귀는 새들, 

움트는 제비꽃, 

햇살이 빛을 비추고 내 하루는 그 햇빛으로 가득 찬 것처럼 빛나요. 


하지만, 하나의 말이 내게 옵니다. 

그 단어는 내게 와서 꽃이.... 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겨울로 만들어버리네요.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고, 푸른 나무들 밑에서 내 마음을 차갑게 얼려버리죠.


도대체 그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번엔 가을입니다. 

한바탕 가을바람이 불어 재껴서 나뭇잎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네요. 

뼈 밖에 남지 않은 나무들이 왠지 슬퍼하는 듯도 보입니다. 

말라빠진 나뭇잎들이 바닥에 떨어져있고, 왠지 약간 죽음의 기운도 감돌아요. 

(친구가 수북이 쌓인 낙엽을 보고는 

'저기 봐! 저게 다 나무의 죽은 모가지들이야!' 하고 소리친 게  기억나는군요..) 



하지만 또 하나의 말이 내게 옵니다. 

역시 꽃이 된 것이 아니라 이번엔 나에게 힘을 주네요. 

순식간에 죽음의 공기는 환희로 바뀌어 버리고 

나는 마치 여름의 한 나날에 있는 것 마냥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나무들이 발가벗고 있더라도 말이죠.



도대체 이 말은 또 어떤 말이었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이 시인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해석은 분명 각자의 몫입니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어 버리는 말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왠지 이 시를 읽고 나서,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수고하셨어요, 사랑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차디찬 바깥바람에 아버지의 코 끝이 빨개졌어도 마음만은 따뜻한 봄날일 수 있도록요.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옆에 있어주어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불타는(?) 여름날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오늘 하루는 겨울을 봄으로 바꾸고, 가을을 여름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혹은 내 스스로에게 무심코 마음을 얼려버리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봅시다. 













일상문학 숙제


1. 내가 주로 쓰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자.

2. 나의 말은 봄의 말인가? 여름의 말인가? 가을의 말인가? 겨울의 말인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상문학은 규칙적으로는 주 1회 발행으로 바뀝니다. 1회는 꼭 양질(혹은 양질이고자 노력하는)의 글을 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자잘한 작은 글들을 실어나르도록 할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는 나와 함께 흘러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