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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Graph Feb 08. 2017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일상문학 열아홉 번째



얼마 전, 김소월을 다시 만났던 대학로의 작은 서점에서 

시인 백석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월과 같이 고등학교 때 잘못 배웠고, 그래서 그도 싫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백석 또한 4400원이라는 가격 덕분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고판보다도 조그마한 작은 초판본 덕택이기도 했고요.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읽은 백석의 한 글자, 한 글자는 

역시 고등학교 때의 백석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시인이었고, 

그렇지만 한편으론 솔직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그 자신에게 매우 솔직할 줄 아는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가 외면하는 것을 인정할 줄 알며, 

그의 마음속에 스쳐가는 

작은 시샘, 작은 회한, 작은 분노 따위도 그대로 보듬어 안아 

써 내려갈 줄 아는 시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귀여운 시인이었습니다.


출처: zoommy




사실 그가 귀엽다는 건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울 때부터 알긴 했습니다만.


아니 어느 당나귀가 그렇게 귀엽게 울 줄 알죠? 

백석의 당나귀만 그렇게 귀엽게 울 겁니다. 











요즘 말로 '잘생기면 다 오빠야'라는 말이 있죠.

그런 의미에서 백석은 귀여운 오빠입니다. 

그의 얼굴이 다 했죠. 










백석이 하는 일이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백석의 시에서 읽어내야 할 것도 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가 살았던 이북의 애틋한 고향땅을 모릅니다.

그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함께 갈 산골을 모릅니다. 

그의 시 대부분에 등장하는 꽃과 동물과 향토음식들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외면한다고 말하는 것, 

그가 생각하는 것,

그의 흰 바람벽에 어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백석의 시를 함께 읽으며 

그가 그의 생각을 어떻게 품어내는지 함께 보아요.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시인은 무언갈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게 일제 강점의 현실인지, 그의 너무나도 자잘한 삶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외면을 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듯 이야기를 하는군요. 


일단 날씨가 너무 좋답니다. 

가난한 동무가 어렵사리 마련한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 것도 그의 외면에 한몫했다는군요. 

고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도 

그리고 월급을 얼마 받지 못했지만 그게 또 참 고마운 탓이래요. 

자신에 나이에는 맞지 않지만 기른 수염이 조금은 뽐내는 기분이 드나 봅니다. 

생선을 진장(진간장)에 지져 먹으면 그렇게 맛나다지요? 

그렇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게 시인의 마음씨를 크게, 넓게 만들어 

결국 무언가를 외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외면함에도 시인은 썩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외면'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외면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외면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명을 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귀여운 생각입니까.



세상일에 매사 싸우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부딪힌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한편으로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과부하가 걸려 고장 나기 마련입니다.


비굴하게, 소시민같이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외면하는 것 보다야

저런 작지만 행복한 일들을 떠올리며 

적극적으로 외면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하지만 시인의 마음속이 위의 시처럼 행복한 일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긋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거리에 사람들이 흥성흥성한 봄날의 어느 밤에 

시인은 하이얀 이부자리 위에 앉아 생각을 생각합니다.


시인이 생각하는 것은 

불쌍한 아버지와

결국 이어지지 못한 연인과

자신을 버린 친구와 


풍족하게 술을 마시며 싸단닐(?) 돈 많은 사람들과

그와 대비되어 새 책을 살 돈도, 

라디오도 하나 없는 시인 자신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생각들은 

시인의 눈가와 가슴가를 뜨겁게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서 생각을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인가 봅니다. 


시인은 이러한 생각이 시인의 눈가를 가슴가를

시리게 하는 것도 생각하며 시를 마칩니다. 



그리하여 시를 다 읽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시인의 묵직한 생각입니다. 

자신을 처지를 생각하다가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나는 자신을 생각하는 시인을 생각하는 우리들은 


백석이 전하는 담담하면서도 무거운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 안의 그런 생각들도 끝까지 놓지 않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우리는 과연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시인의 말마따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우리의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찹니다.






결국 백석이 건네는 것은 소박한 위로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그도

그의 나타샤도

그리고 흰 당나귀도 

어느 날은 좋아서 응앙응앙 울지만

어느 날은 흰 바람벽 앞에 외로이, 쓸쓸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소박하지만 담담한 위로가 되어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에게 그러했듯이.





일상문학 숙제

1. 백석의 시를 읽어보자

2.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써보자. 그리고 그걸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도 써보자. 


(사진 출처 :zoo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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