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이아 Nov 17. 2022

이해는 가지만 안타까운 '편향'

한국사회 '영어교육'의 정체성에 대한 오랜 고민

소설가의 강연을 듣고 '작가님께서 오늘 전해주신 바를 제 아들의 국어 공부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진 않을 겁니다. 과학자의 강연을 듣고, '방금 말씀하신 이론이 인상적이기는 한데 중고교 과학교과 학습 상황으로 가면 한계가 뚜렷한 것 같습니다'라는 의견을 개진하지는 않지요. 그런데 언어에 대한 강연을 하면 청중의 질문 대부분은 '방금 말씀하신 내용을 (자신과 자녀의) 영어공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로 수렴합니다. 개인의 경험이긴 하지만 5년 이상 패턴이 반복되는 걸 보면 극소수만의 태도는 아니리라 짐작합니다. 


제가 영어를 중심으로 응용언어학, 인지언어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영어학습과의 연계 방법을 떠올리시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붙은 대중강연은 대부분 영어학습법과 관련이 깊기에, 저의 강의에서도 비슷한 해답을 원하시는 것이겠고요. 그럼에도 언어학의 논의가 초중고 교과학습에 직접 적용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시거나, 이론의 복잡성을 '한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편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저명한 인지언어학자 질 포코니에(Gilles Fauconnier) 선생님과 한 시간 정도 일대 일 면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대학원생 한 명당 20분 정도를 할당받았는데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제가 한 시간을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만세) 그때 선생님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나: 개념 은유나 정신공간과 같은 인지언어학의 이런저런 개념과 도구를 가지고 학술 리터러시 발달을 돕고자 합니다. 

포코니에: 아, 작문 교육에서도 인지언어학을 활용하는군요? 처음 들어 봅니다. 

나: (당연히 아실 거라고 생각했기에 조금 놀라며) 네. 여러모로 유용한 이론이라서 제2언어 교수학습에도 적용이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포코니에: 그렇군요. 들어본 적이 있긴 한데 사실 제 이론이 교육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건 전혀 아니라서요. 의미를 중심으로 언어를 엄밀하게 기술하고 이해하려는 거지 그걸로 외국어를 가르쳐 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네요.


겨울 나무처럼 앙상한 '영어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저 또한 영어교육을 전공하면서 어떤식으로든 '영어'를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습니다. 잘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지금도 관심이 많고요. 하지만 '잘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고교 학생 때에는 주어진 시간 내에 깔끔하게 정리된 어휘문법 공식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멋져 보였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어진 커리큘럼과 교과서를 잘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은 학생들과 함께 (1) '영어'가 무엇인지, 그것이 작동하는 핵심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면서도 (2) 우리가 생각하는 영어는 어떠한 사회문화적, 제도적, 정치적, 지리적 힘의 교차점에 있는지 등에 대해 성찰하며, (3) 언어와 사고, 정체성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얽히며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지 등을 개인과 사회의  경험과 엮어가며 살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통해 영어를 넘어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고, 언어와 문화, 정체성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한국사회에서 '영어교육'이라는 기표를 사용하면서 위와 같은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제도적인 틀에서 영어교육과에서 일하고 있는 저로서는 오랜 시간 이 사회와 함께한 '영어교육'이라는 이름을 쉽게 버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지독한 딜레마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온 영어교육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가고자 하지만, 영어교육과에서 일하며 예비교사들을 중심에 두고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수업을 준비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건 '영어'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 '교육'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입니다. 한두 마디로 답할 수는 없지만, 비판응용언어학, 트랜스랭귀징, 영어교육의 탈식민 등의 키워드를 붙잡고 영어교육이라는 명칭이 가진 뿌리깊은 '편향'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계속 궁리하고 있습니다. 



.

.

.


덧. 제가 밴댕이 속이라서 몇 해 전 <단단한 영어공부> 관련 강연 후에 한 참여자에게 받은 질문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0살 아이를 어떤 학원에 보내면 좋을까요?

"아... 제가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네요."

작가의 이전글 영어 연음 이해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