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시간에 글을 잘 쓰게 되는 방법? 그런 게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글 잘 쓰는 분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글쓰기를 완성된 사고의 표현(an expression of complete thoughts)으로 보지 않고 사고의 도구(a thinking tool)로 이해하며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쓰기는 말을 옮기는 기호 체계일 뿐?
중고생들에게 '쓰기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말을 적는 것'이라는 답변이 나오곤 합니다. 필기를 의식한 정의로 보이는데, 요는 구어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하는 체계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쓰기는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리는 말소리를 잡아두는 효율적인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는 커다란 약점이 있습니다. 쓰기는 말소리를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즉, 소리를 가진 말이 그 자체의 특성이 있듯, 쓰기는 쓰기만의 기능이 있다는 것, 쓰기는 말하기를 돕기도 하지만 자기 나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봅시다. "밥 먹었어?"나 "Did you eat?"은 대화의 일부를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문장은 어떨까요?
"The reason why it follows from the definition of literature as highly valued writing that it is not a stable entity is that value-judgements are notoriously variable."
문학평론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의 문장입니다. 꽤 복잡하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평소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 생각엔 저런 말을 계속해서 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릴 것 같습니다.
(물론 <빅뱅이론>의 너드(nerd) 셸던처럼 문어적 말투를 캐릭터의 성격으로 만들어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만,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는 무척 힘들죠. 혹시 셸던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두 링크를 참고하세요. (영문))
좀더 긴 담화를 생각해 봅시다. 박경리 작 <토지>는 모두 20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 길이의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문학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어떤 천재도 문자로 기록된 소설이 보여주는 정교함을 가지고 20권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 20권 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300-400 쪽 분량의 장편만 생각해 봐도 그렇죠.
쓰기의 물리적 성질과 새로운 가능성
이상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글은 말을 적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글과는 사뭇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글이 갖는 물성(materiality, 물리적 성질)에 기인합니다.
생각 즉 우리 머리 속의 아이디어, 감정, 의견, 논리적 설명 등은 특정한 패턴을 지닌 뇌활동으로 존재합니다. 뇌세포의 활동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갖가지 생각을 만들어 내지요. 이들을 언어화할 때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 말하기와 쓰기입니다. 말의 경우 음성을 통해 표현되는데, 이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녹음을 하면 된다고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재생 버튼을 눌러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긴 매한가지입니다.
글의 경우는 다릅니다. 글은 시각매체인 글자로 표현되죠. 문장을 적는 순간 반영구적으로 보존됩니다. 즉시 휘발되는 말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반영구적 매체로 물화(materialize)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순간 내구성이 높은 매체가 눈 앞에 펼쳐집니다. 손에 쥘 수도,눈으로 볼 수도 없었던 생각의 조각들이 지각할 수 있는 반 영구적 형태로 변환되는 것입니다. 단어들은 말소리처럼 휘리릭 도망갈 수 없죠. 이제 적혀있는 문장을 기반으로 또 다른 생각을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여가는 문장들만큼 머리 속의 생각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짐을 내린다'라는 뜻을 가진 'off-loading'이라고 합니다. 가벼워진 만큼 또다른 생각을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쓰기는 인간 두뇌의 연장(extension)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technology)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외장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가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것입니다. 생성된 하드디스크만큼 머리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많아지게 되고요.
여기에 쓰기의 마법이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지녔다 하더라도 복잡한 생각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긴 시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기억과 주의집중이 무한대의 용량을 갖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이면서도 복잡한 사고를 지속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경우 대하소설을 써내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요소들을 모두 담기에 인간의 기억력은 참으로 초라하죠.
글쓰기는 이 초라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복잡한 내용과 긴 시간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두뇌를 반영구적 기록으로 보완함으로써 복잡다단하면서도 논리적인 사고를 쌓아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복붙', 인류 최대의 지적 발명품!
한편 글의 물성은 컴퓨터의 발달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지식노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라고 불려도 괜찮을 "Ctrl+C, Ctrl+V'가 나오면서 문장을 마음껏 조작(manipulate)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썼던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더하고,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슥삭슥삭 바꾸면 됩니다. '복붙'은 글쓰기의 혁명이었죠. (물론 일부 학생들에겐 표절의 혁명이기도 했지만요.)
이는 단지 효율성의 증대뿐 아니라 인지과정의 변화까지 가져왔습니다.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쓸 때와 손글씨로 글을 쓸 때 생각의 과정이 사뭇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손글씨로 완결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워드프로세서 사용자들에 비해 글의 개요를 잡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경향이 있죠. 타이핑과 손글씨 쓰기에 필요한 인지적, 정서적 자원이나 안구, 팔목, 손가락 운동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고요. 지금 박사논문을 쓰는 분들과 과거 손글씨로 박사논문을 쓰던 분들이 다른 사고과정을 거쳐 글을 생산하고 있음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Ctrl + C, Ctrl +V는 쓰기와 편집 과정에 혁명을 가져왔다.
글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한다면 글을 단지 표현(ex-pression; 밖으로 밀어내기)으로 생각하는 것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글쓰기가 그저 생각이 두뇌 밖으로 탈출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글이 되는 순간 우리는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글은 우리를 노려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글이 사고과정에 개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저는 'in-pression'이라고 부릅니다. 외부에서 내면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이 두 과정 즉 ex-pression(외부로 내보내기)과 in-pression(내부로 밀어넣기)이 끊임없이 교섭하는 과정입니다. 끄집어 내는 일임과 동시에 끄집어 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 이 두 과정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돌아가는 것입니다.
The Möbius strip of thinking and writing (CC-BY-SA 3.0, Original by David Benbennick)*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게 아닙니다. 단지 생각을 남기기 위해 쓰는 것만도 아닙니다. 생각을 내어놓고, 검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손끝에서 나오는 텍스트와 머리 속 사고과정이 끊임없이 교섭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 보이지 않는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 텍스트가 되고 이것이 다시 사고의 재료가 되는 과정, 그 전부가 쓰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쓰기는 잡히는 것과 잡히지 않는 것을 엮어내는 신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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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전에 비슷한 내용을 영어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A virtuous cycle in writing and securing a reflective/talking space
When we write, two things happen in tandem. Thoughts are expressed into writing; writing is ‘in-pressed’ into thoughts. This dialogic, mutually-enriching move of the two complementary processes creates a virtuous cycle in writing. Usually, the more proficient you become the more power of in-pression you can appreciate.
From a developmental perspective, the desire for expression dominates at early stages. As you develop as a writer, you become better at striking the balance between the in- and ex-pressive modes. (And if you are a competent, super-fluent writer, or hit a day of life when everything feels so smooth, the two modes are seamlessly meshed on a real-time basis!) Now you don’t just pour out your ideas and emotions, but ponder upon ‘the configurations of the black marks’ on paper, negotiate with them, and even let them talk to each other. In this sense, growing as a writer requires one to secure a reflective distance between one and the written, and also to create a talking distance among different parts of the writ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