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메타포와 권력

by 가이아


10여 년 전 작고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의 강연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그의 강연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대목을 소개할까 합니다. (정확한 단어 대 단어 번역은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좋은 것/좋지 않은 것, 혹은 선한 것/악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한 것(the evil)은 많은 치장을 필요로 합니다. 더 많은 모자와, 신발과, 옷과 밴드를 필요로 합니다. 더러운 것들은 속이려고 많은 것들을 입고 나오죠. 그러나 악한 것은 아무리 치장을 해도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악한 것은 더 많은 피와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것들은 정말 단순합니다.


하지만 진정 좋은 것, 선한 것은 복잡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수많은 영역에 존재하며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은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합니다. 다양합니다. 나의 문학은 이것 즉, 복잡하지만 좋은 것을 추구해 왔습니다."


Morrison.jpg Image by Vox


그 외에도 기억나는 대목들이 많은데 특히 다음이 인상깊었습니다. 오늘 글의 주제인 권력과 메타포의 관계와 맞닿아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관객 중에서 예술가로 보이는 사람이 눈물로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작가님은 ‘변방(edge)’에서 일하고 살아간다고 하셨는데, 그 어려움, 눈물, 외로움을 어떻게 이기셨는지요?” 토니 모리슨이 대답했습니다. “내게 변방은 자유입니다. 그곳이 가장 자유롭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변방에 있습니다. 사실 메인 스트림과 변방이라는 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변방에 살고 있으니까요. 다만 어떤 이는 경계를 넘나들고, 어떤 이는 변방에 머무르며, 또 어떤 이는 입구에서 다른 사람들을 못 들어오도록 막고 서 있습니다.”


중심과 높이: 권력은 어떻게 메타포적 공간을 점유하는가


어렸을 때부터 ‘서울에 올라가다’라는 표현이 흥미로왔습니다. 사실 서울이 다른 지역보다 특히 더 높은 곳에 있는 건 아닌데 왜 ‘올라가다’는 표현을 쓸까요? 특히 강원 산간지방처럼 서울보다 고도가 높은 곳이나 지도상으로 서울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서울을 방문할 때 왜 ‘올라간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살펴보니 (확실한 답은 알 수 없었지만) 임금이 있던 곳이어서 ‘올라간다’는 표현이 만들어졌으리라는 설이 유력하더군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있는 곳, 권력과 위엄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니 ‘내려간다’가 아니라 ‘올라간다’가 되는 것이지요. 이 짧은 표현에도 권력관계가 숨어있었습니다. 위/아래는 단지 공간과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지역과 지역, 도시와 도시의 관계에서도 ‘중심’과 ‘주변’의 메타포가 나타납니다. 뉴욕은 미국의 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이지만 ‘미국 경제의 중심’이죠. 헐리우드는 반대편 서부의 중심에 있지만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이고요. 도시 내부에서도 공간과 권력의 메타포가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시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는 것입니다. 고교시절 ‘Central Business District(CBD)’라고 배웠던 도심의 상업시설, 그리고 ‘변두리’가 있죠. 도심에 나가면 인구밀도가 높고, 더 ‘세련된’ 느낌의 상가들이 있고, 최첨단으로 보이는 빌딩들이 즐비합니다. ‘중심(center)’는 부와 권력의 공간이고 ‘주변(periphery)’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간입니다. 아무래도 중심부가 더 ‘있어 보이는’ 법이죠.


skyscrapers.jpg Photo by Liv Hema on Unsplash


건물마다 들어선 회사에도 공간의 메타포가 잘 나타납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있고, ‘상관’과 ‘부하직원’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는 대개 가장 높은 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윗사람’은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에 비해 건물의 경비인력을 위한 휴식공간은 주로 지하에 마련됩니다. ‘아랫사람’은 ‘맨 아래’에 머무르는 것이지요. 지위와 권력의 상하관계가 건물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상하관계로 사상(mapping)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국가 혹은 도시들은 가장 높은 빌딩을 지으려고 경쟁을 합니다. 가장 높은 빌딩을 소유하는 것으로 기술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최고’라는 상징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을 높이높이 올리려는 욕망은 경쟁과 과시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공간과 권력: 몇몇 영어 표현들


영어에서도 다양한 권력관계가 공간이나 위치의 메타포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높낮이는 성공과 권력의 의미를 담게 됩니다. 아래 예문을 보시죠. (Goatly, 2007)


At the height of his career he was giving 2 concerts a week. (그의 경력이 최고조일 때 주마다 두 번의 콘서트를 했다.)


He was at the peak / summit / apex / pinnacle / zenith of his career by the age of 35. (서른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커리어는 정점에 달했다.)


You tower over / above them.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이 솟아있다는 의미에서) 너는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성공했다).) (p.36)


이들 표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높은 것은 성공적이며 뛰어난 것’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렇기에 높이 올라는 것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고, 낮은 곳에 머무는 일은 지양해야 할 일이 되는 것이 되죠. 이같은 관점은 서두에 언급한 토니 모리슨의 중심/주변 메타포에서도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centrepiece’는 가장 중요하고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내고, “take the center stage”라는 표현은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다”라는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다”, “핵심적인 일을 수행하다” 정도의 뜻이 됩니다. 한국에서 최근 많이 사용되는 은어인 ‘인싸’는 ‘인사이더’의 준말로 사회적 관계의 허브(hub)가 되는 사람, 특정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게 됩니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the inner circle”은 특정 조직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거나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이에 비해 주변을 나타내는 ‘side’는 중요도나 권력에서 비껴나 있는 개념을 표현하곤 합니다. 영화에서 ‘central role’ 즉 주인공 역할이 아닌 2인자나 ‘꼬붕’ 역할을 맡는 캐릭터를 ‘sidekick’으로 표현한다거나 (배트맨과 로빈에서 로빈과 같은 역할이 sidekick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이슈나 사건을 표현할 때 ‘sideshow’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처럼 side나 periphery 같은 단어들은 ‘core’나 ‘kernel’, ‘center’나 ‘hub’가 갖는 메타포적 의미와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곤 하죠. (p. 40) 우리말에서도 ‘네가 여기의 중심이야’라고 하면 상대가 특정 공동체나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뜻하고, ‘구석에 좀 찌그러져 있어라’는 말은 진짜 구석으로 가라는 말이라기 보다는 주요한 역할을 맡을 생각을 하거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공간을 뒤집다.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다.


규모가 꽤 큰 기관의 조직도를 보고 기분좋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직도의 가장 위에는 그 조직의 수장, 대표가 자리하게 되죠. 회사라면 CEO가 위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당 단체는 이것을 거꾸로 뒤집은 조직도를 선보이고 있더군요. 즉, 흔히 가장 ‘말단’이라고 표현되는 사람들이 조직도의 맨 위에 올라와 있고, 웹페이지를 한참 스크롤해서 내려가야만 대표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참신하고 인상적인 시도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심’에 서고자, ‘위’에 오르고자 애씁니다. 물론 이것이 개개인의 책임이나 잘못은 아닙니다. 사회의 구조가 그것을 지향하게 만드니까요. 올라가야 살고, 중심에 서야 인정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왜 우리는 ‘인사이더’로, ‘탑’에 서야 할까요? 그렇게 윗사람/아랫사람을 가르고 ‘인싸/아싸’를 가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변방과 낮은 곳의 사람들은 정말 덜 중요하거나 덜 가치로울까요? 혹 그 반대는 아닐까요? 변방이 있기에 중심이 있고, 아래가 있기에 위가 있으며, 토대에서 받쳐주는 수많은 이들이 있기에 건물이, 성공이, 명성이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어디/무엇인가요?


기존의 관습에 맞게 메타포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나아가 어떻게 그 메타포를 뒤집을 것인가의 문제 또한 중요합니다. 높이와 중심의 메타포에서 벗어나 낮은 변방에서의 삶과 기쁨, 그 역동성을 꿈꿔보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한 실천 아닐까 합니다.


<참고문헌>


Goatly, A. (2007). Washing the brain: Metaphor and hidden ideology. John Benjamins Publishing Company.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commend는 3형식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