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궁극의 판옵티콘에 대하여
'자유로운 죄수'
궁극의 판옵티콘은 계량화, 서열화, 표준화이다.
이들은 정치권력을 훌쩍 넘는 뛰어넘는 수준에서 작동하며, IQ, 학급 석차, '이상적' 신장과 체중에 대한 집착, 모의고사 점수, 결혼정보회사의 등급산정, 지원가능 대학 차트, 학점 평균, 자격증의 수, '격조'있는 식사 자리, 결혼 적령기, '최소한'의 혼수, 출신학교, 장애인/비장애인의 엄격한 구분, '소수자'에 대한 배제, 소득과 자산 서열, 뉴스 기사의 클릭 수,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 및 채널 구독자 수, 거주 아파트의 평수 등으로 우리 삶에 침투해 있다.
이들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표준은 '세계의 공리'로 작동하며, 서열은 '공정의 도구'로 합리화되며, 계량은 '표준의 기능'으로 자연화된다.
꼼꼼하고도 촘촘하게 모두를 줄세우는 판옵티콘에 대한 무지는 우리를 '자유로운 죄수'로 만든다.
물론 어떤 세계는 더 정밀한 표준, 서열, 계량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의 영역에서 더 절실한 것은 평가와 서열에 포획되지 않는 호기심과 기쁨, 감동과 협력의 시공간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는 '학습자의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여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이에 기반하여 맞춤식 처방을 내린다'는 식의 '미래교육'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