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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Mar 09. 2022

제롬 브루너, <내러티브로서의 삶>, 그리고 오늘

삶은 내러티브를 닮고, 내러티브는 삶을 담는다.



1. 다들 이야기하는 글이지만 실제로는 별로 안 읽는 글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내러티브 연구의 고전이라 불릴 수 있는 글이고 발표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제롬 브루너'는 교육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한 분께는 무척 친근한 이름일텐데요. 인지심리학자로서 인지혁명을 주도하고 <교육의 과정>을 펴내 교육과정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 브루너가 맞습니다. 


Bruner, J. (1987). Life as narrative. Social research, 11-32.


한 시대를 연 논문이지만 지금 읽으면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는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사상과 이론이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집니다. 바로 아래 키팅 선생님의 말씀처럼요. 


"여러분은 단어들과 언어를 음미하게 되는 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간에 말과 사상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You will learn to savor words and language. No matter what anybody tells you, words and ideas can change the world)." - Mr. Keating



2. 브루너는 사고의 모드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소위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사고는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에 강조를 둡니다. 연역과 귀납을 중심으로 하는, 수학과 과학을 이끌고 철학의 기반이 되는 사고라고 여겨지는 사고방식입니다. 인지혁명 이후 인간의 사고와 마음을 컴퓨터에 비유했던 전통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관점이었죠. 


3. 하지만 그는 인간사고의 또 다른 방식이 존재함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야기 모드로서의 사고입니다. 이야기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혹은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 하에서 세계를 능동적으로 지어가는 일이라는 구성주의적(constructivist) 관점을 취하죠. 이는 이후 실증주의적 사회과학 및 교육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내러티브적 마음을 연구하고, 내러티브를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주요한 매개로 삼자는 서사적 전회(narrative turn)의 기반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내러티브 연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인터뷰와 구술, 자서전적 글쓰기 등을 새롭게 보는 전기를 마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4. 그는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자서전(autobiography)에 대해 논의합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죠. 꼭 글로 쓰지 않더라도 마음에 담고 있는 서사가 있습니다. 철학자 넬슨 굿먼(Nelson Goodman)이 이야기하듯 물리학이나 회화, 역사 등이 세계를 만드는 방식(ways of world making)이라면 우리의 자서전(autobiography)은 "인생 만들기"를 위한 일련의 절차들(a set of procedures for "life making")입니다. 우리는 삶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시인 예이츠(Yeats)가 "춤과 춤꾼을 구별할 수 없다"고 했듯이, 우리 자신과 그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 또한 구별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가 한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고 할 때 그것이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화자의 삶과 떼어놓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5. 이야기에 대해 브루너가 본격적으로 펼치는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설명하는 방법은 이야기 외엔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lived time) 설명해내기 위해서는 내러티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죠. 강물처럼 흐르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서 조각을 모아 가지런하게 배치하고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고 패턴을 찾아 시간의 축 위에서 연결하는 일이 내러티브라 할 수 있을 겁니다. 


6. 두 번째 주장이 중요합니다. 브루너는 삶과 내러티브의 관계를 '상호 영향을 주는 관계'로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예술은 삶을 모방(mimesis)하고,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듯 삶은 예술을 모방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을 닮고, 우리 인생은 우리의 이야기를 닮아갑니다. 상호적으로 엮여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가 삶을 이야기로 만드는 방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브루너는 이야기의 근원을 문화에서 찾습니다. 


7. 흔히 '개인적 서사'라고 표현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브루너에 의하면 이러한 개인적 서사 또한 당대의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즉, 한 개인의 서사는 "가능한 삶들(possible lives)"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들, 생각들에 빚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개인 서사의 유니크함, 즉 말 그대로 '인류 역사 속 단 하나의 이야기'는 일종의 신화일지도 모릅니다. 디테일에서 작은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러티브를 관통하는 흐름 혹은 스토리 아크(story arc)에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혹은 타인의 삶을 다양다종한 언어로 엮는 방식은 문화가 제공하는 이야기틀의 변주일 뿐인 것이죠. 그래서 지배적 서사, 원형적 서사,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고요. 


8. 브루너가 내러티브 혹은 스토리에 대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들이 그저 삶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러티브는 언어와 담화의 구조일 뿐 아니라 심리적 실체, 즉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가 됩니다. 자신이 구축한 이야기는 지각경험을 다르게 구조화하고, 기억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삶에서 '사건'이라고 불리는 것 자체를 구획하며 의도적으로 구성하게 됩니다. 자신이 체화한 스토리에 따라 지각이, 기억이, 사건이 달라집니다. 표면적으로는 똑같은 경험이라도 어떤 내러티브 안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인지과학 등에서 이야기하는 '프레임', '스크립트'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지요. 


9. 예를 들어 봅시다. 한국사회 가족서사에서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장남/장녀 내러티브입니다. 한 가족 내에서 장남/장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것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부모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지, 다른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권력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 심지어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 어떤 '수치'를 느껴야하는지까지에 이르기까지 매우 정교하게 조직된 서사라고 할 수 있죠. 


저를 비롯해 한국사회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이런 내러티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배적 내러티브로부터 탈주하려는 몸부림과 '그래도 장남으로서 이렇게 사는 게 맞지'라는 생각의 충돌이 많은 이들이 겪는 갈등의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부장적 서사가 아닌 전혀 다른 가족을 상상하고 그 내러티브를 체화했다면 어떨까요? 사회가 전혀 다른 서사를 받아들여 공식적인 교육과정의 일부로 삼았다면 어떨까요? 그런 상황이라면 많은 장남/장녀들의 어릴 적 경험은 이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것입니다. 이전 세대를 거치며 장남/장녀로서 '훌륭하게' 살아온 삶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기존의 사회문화체제에 '복종하며' 살아온 삶으로 해석될 수 있겠죠. 


10.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수업시간에 자주 읽게 되는 글의 장르 중에 "언어학습자서전(language learning autobiography)"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졸저 <단단한 영어공부>의 첫머리를 통해 설명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섯 해째 대학생들이 쓴 ‘영어학습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영어학습 자서전이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영어공부의 역사를 정리한 글입니다. 영어공부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영어공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지, 기억에 남는 교재는 무엇인지, 주로 어떤 방법으로 공부했는지, 영어공부의 위기 또는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는지 등등 그간 걸어온 공부의 길을 찬찬히 돌아봄으로써 내가 해 온 공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지금껏 백여 명이 정성스레 써 낸 영어학습 자서전을 읽어 오면서 학습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을 이끌어 가는 다양한 이들과 만났습니다. 학부모, 영어유치원 선생님, 학교 선생님,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유학 및 어학연수 업체 관계자, 과외 선생님, 형제자매, 학교와 학원 친구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국의 영어교육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걸어온 공부의 궤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영어학습 자서전을 관통하는 주제는 ‘영어공부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지금의 영어 실력’으로 요약되더군요. “읽기는 꽤 하는데 쓰기는 잘 안 된다”, “다른 영역에 비해 말하기가 떨어진다”, “전반적으로 내 영어 실력에 만족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노출이 부족했나 보다” 같은 서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11.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경쟁", "정서적 부침", "자신의 영어실력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긴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읽은 200편 가까이 되는 언어학습 자서전의 상당수는 이런 주제의 변주였다고 생각합니다. "영어학습에 대해 최대한 자유롭게 써보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2. "제가 영화를 통해 영어공부를 많이 했는데요. 영화 <Arrival>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잊히지 않습니다. 거기에서는 삶과 시간, 관계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그걸 보고 제가 인간에 대해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서 대사를 다 외웠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를 좋아하거든요. 내용도 좋고 말도 너무 잘 하고. 무엇보다 웃긴데 또 심각한 이야기를 잘 녹여내요. 저는 그래서 트레버의 말투를 따라하기도 하고 거기 나오는 주제에 관련된 미디어와 뉴스 기사를 열심히 찾아보면서 영어공부를 했어요."


"남들 앞에서 영어를 잘 못하거든요. 근데 낭독하는 건 좋아해요. 아주 고요한 방 안에서 책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제 소리에 집중하는 거죠. 한국어랑 영어랑 소리가 많이 다르잖아요.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발음이고요. 그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엔 제 목소리를 녹음해 보기도 하고, 그걸 들으면서 좋아하는 동화를 익히기도 하고 그랬죠. 좋은 발음으로만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좀 나르시시스트인지 몰라도 제 목소리 듣는 게 나쁘지 않더라고요."


"영어가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세상이 영어영어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왜 꼭 영어만 중요할까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영어에 너무 많은 관심과 자원이 가는 게 못마땅했어요. 그래서 공부가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영어공부에 대해 꽤나 오래 저항한 것 같아요."


13. 네. 위와 같은 이야기는 학생들의 내러티브에서 본 일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지금 휘리릭 써 본 이야기입니다. 학생들이 삶에서 영어는 대개 '언어'가 아니라 '과목'이었고, '만남'이 아니라 '평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템플릿은 이 사회가, 미디어가, 제도가, 학교와 학원 수업이, 그리고 부끄럽지만 저와 같은 영어교육 연구자들이 심어준 것이지요. 


14. 물론 한 개인 안에 이런 내러티브의 틀이 여럿 존재하며 경쟁하고 갈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의 서사를 체화하고 거기에 편안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서사의 '혼돈'과 '저주'를 견뎌내며 시시각각 기억을, 결심을, 의지를, 감정을 조율해내야 하는 존재인 것이죠. 영어교육이나 가족 뿐 아니라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지배적 내러티브가 격돌하고 갈등하며 때로는 손을 잡습니다.


15. 그런 면에서 우리가 공부하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억압적이고 불평등을 야기하며 차별과 배제를 부추기는 사회문화적, 정치적 내러티브(sociocultural, political narrative)를 다시 쓰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는 편견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라고 칭하고, 누군가는 속박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이 우리를 규정하고 있고, 이를 온전히 혼자 힘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다양한 템플릿들을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야겠죠. 그것이 가족에 대한 것이든, 성정체성에 대한 것이든, 노동에 대한 것이든, 종교와 신념에 대한 것이든, 교육에 대한 것이든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서사의 틀을 서서히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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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또 어떤 내러티브를 만나게 될까요. 기대도 우려도 되지만 '단 하나의 내러티브',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내러티브'를 강요하는 세계에 균열을 내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직조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단지 거창한 말글이 아니라 피땀으로, 저항으로, 용서로,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로, 예상치 못했던 꽃다발로, 공들여 쓴 댓글로, 작지만 꾸준한 후원으로, 무엇보다 돌봄과 환대 그리고 연대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또 그것들을 훌쩍 넘는 세계에서 더 나은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해 계속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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