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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Apr 17. 2023

이런 대표님 어떠신가요

 회사 구내식당 주변에 터전을 잡아 사는 길냥이가 최근에 출산했다. 이제 막 태어난 꼬물이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회사로 출발했다. 지난주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이번주 실밥 제거를 한 우리 집주인님 고영희 님과 함께 갔다. 혹시 합사가 가능할지, 새끼 고양이 냄새를 맡게 해 주고 반응을 살피려고 계획한 동행이었다. 하필 비가 온 주말이었지만 괜찮았다. 비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영희 님은 새끼의 대찬 울음소리를 거부했다. 아주 강하게 거부했다. 눈도 못 뜬 새끼의 냄새를 맡더니, 이내 반갑지 않은 침입자임을 직감했는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경고의 메시지였다. 우리 집 고영희 님도 새끼 길고양이도 스트레스가 될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후진을 하려는데, 대표님이 나와 손짓을 하셨다. 후진하는 내게 방향을 지시해 주신 것인데 인사를 하려고 차 문을 열었더니 나였는지 모르셨는지 깜짝 놀라셨다.     


 “주말에 어쩐 일이야?”

 “아, 안녕하세요. 저기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그랬더니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그래서.”     

 대표님은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있던 아이들을 보셨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고양이들 잘 봤어? 너희들은 몇 살이니?”

 “저는 11살이요.”

 “나는 네 짤이에요.”

 “그래, 할아버지가 용돈 줄게. 맛있는 거 사 먹어.”     


 갑자기 지갑을 여시며 오만 원권 두 장을 꺼내시는 대표님. 괜찮다고 만류했으나 이내 나는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 과장, 얘기 들었어요. 맘고생 많을 텐데. 회복이 먼저니, 회사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요양 잘하고 수술 잘 받고 와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 잘 될 거야.”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표님의 지갑에서 나온 십만 원보다, 내게 건네신 위로 몇 마디가 더 큰 힘이 되었다. 빗길 운전 중에, 멈추지 않던 눈물은 병가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잦아들었다. 회사 공장이 추가로 세워지면서 23년 하반기는 바쁠 예정인데 공장 가동을 목전에 두고 병가라니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병가를 채우고 돌아오면 더 열렬히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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