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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Feb 17. 2023

이젠 과장님이라 부릅니다

박봉이지만 괜찮아

〈200800610〉     


 나의 첫 사원번호다. 첫 정직원으로 입사했을 때 내 나이는 20대 아홉수를 달리고 있었다. 여자 나이 스물아홉.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으로 들어와 사회의 단맛, 쓴맛을 다 보고는 4년을 꽉 채우고 햇수로 5년 차 되던 해에 퇴사했다. 그리고 사회생활 공백기 다시 4년. 그렇게 또 늦은 나이, 37세 되던 해에 생애 두 번째 정직원이 되었다.      


 경력 단절이 내게 주는 부담은 일단 급여였다. 나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연봉이었지만 회사 측의 배려로 입사 9개월 만에 10%대의 인상을 받았고, 그다음 해에도 7%대의 인상을 받았다. 파격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나이는 과장이지만 직급은 주임이었고 급여는 사원이었다. 3년 반 동안 3박자가 따로 놀았다. 그래도 즐거웠다.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박봉이지만 소득세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 당당하게 해 주었다.     


 ‘이봐, 무시하지 마! 이래 봬도 소득세 내는 직장인이라고!’     


 승진도, 연봉협상도 순조로웠던 입사 4년 차, 둘째 임신을 하게 되면서 승진은 물거품이 되었고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으로 15개월을 까먹어버렸다. 복직 후 뒤돌아보니, 어느새 내 나이는 차장급, 직급은 대리였다. 뒷걸음질 치는 직급. 이름 앞에 써먹는 호칭 나부랭이지만 은근히 신경 쓰였다. 2021년 2월 복직 후 2023년, 승진을 기대해 볼 만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그것은 육아 휴직의 대가였다.     


 올 초, 목표를 설정했다. 이루지 못할 소망이 아닌, 1년 안에 내가 꼭 해내야만 하는 계획 같은 것이었는데 거기엔 과장 승진도 있었다. 일하는 만큼 대우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상무님, 이번에는 꼭 과장될 거라며 대신 김칫국을 마셔주는 부장님, 대리 몇 년 차냐 물어보며 내게 기대의 씨앗을 품어주신 부사장님, 그리고 우리 이번엔 과장되는 거냐며 되물어보는 타 부서 대리들. 다들 나보다 더, 내 승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공고가 발표되고 내겐 축하보다 격려가 더 많았다.     


 “드디어 과장님 되셨네요. 기다리셨죠. 축하드려요. 과장님.”

 “진작에 승진했어야 했는데 육아 휴직 쓰느라고 좀 늦었지, 뭐. 괜찮지? 축하하네.”     


 그리고 내게 가장 큰 부담이었던 급여는 역대 최대 폭으로 올랐다. 나도 이제 연봉 4천만 원대에 접어드는 건가. 은근한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돈 따위에 자부심을 심어 넣다니! 속물근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살아보니 돈 만한 게 없다.      


 직급에 長이 붙었다. 그리고 명함도 새로 제작했다.


 “명함 새로 신청해. 앞으로 매입처 관리도 하고 매입 자재 관리도 하려면 명함 필요할 거야.”     


 명함을 꺼내야 하는 직급. 내 이름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 난 오늘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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