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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Dec 24. 2022

경력단절 해제하기

취직일기Ⅱ

 채용담당자는 회사의 업종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각종 사진이 걸린 대형 회의장에 나를 밀어 넣고는 기다리라고 했다. 이력서를 제출하기 전, 수없이 해당 기업에 대해 검색은 했지만, 막상 와보니 그 규모에 기가 죽고 말았다. 다시 한번 질문에 대비해 회사를 검색하려는데 아까 그 담당자가 다시 내게 와 안내를 했다. 뜨악. 사장실이다. 작은 체구에 야무진 이목구비를 가진 부모님 연배의 대표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결혼은 하셨고? 그럼 아이는?”

 “아, 남자아이 한 명 육아 중입니다.”

 “둘째 계획은 없으신가? 왜 일하고 싶은 거예요?”

 “둘째 계획은 없고..”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질문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기혼여성이 경력단절을 끊어내기 힘든 이유는 이렇듯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참, 아쉬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회사는 욕심이 났다. 그날 난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채용담당자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금일 면접을 보고 간 전미선입니다. 귀사에 꼭 입사하고 싶습니다. 물론 담당자님께서 채용에 대한 권한은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제 절실함을 표현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 문자 드립니다. 부디 저를 뽑아주시면 힘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일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그 문자를 보내고 내 절실함이 통했을까, 이튿날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에스피엘 강현구입니다. 얼마 전에 면접 다녀가셨죠?”

 “네? 네. 혹시 저 출근하나요?”


 너무 기쁘고 기쁜 나머지 내가 먼저 내 취직 소식을 물었다. 나는 전화를 붙들고 소파에서 일어나 90도로 꾸벅꾸벅 인사하며 연신 고맙다, 감사하다, 열심히 하겠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다. 연발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열정이었는지 정말 기가 막힌다. 그만큼 내겐 경력단절을 끊어내야만 했고, 일이 간절하게 하고 싶었다. 


 얼마 후, 첫 출근을 앞두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 여가가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아 미리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결혼 후 줄곧 전업을 유지 중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 근데 대단하다. 경력단절, 그거 무시 못 하거든. 나도 몇 년 전에 취업 좀 해보려고 이력서도 많이 냈는데 쉽지 않더라고.”

 “맞아. 쉽지 않았어. 결혼 전에야 회식도 하고, 2차, 3차는 우스웠지. 야근은 기본이었어. 근데 그건 나 혼자일 때고 지금은 아무래도 제약도 많고. 우리가 어디 밥 먹듯 야근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겠니. 집에서 우리 꼬맹이들 밥 달라고 기다리는 게 눈에 훤한데.”

 “남편들은 그런 걱정 안 하잖아.”


 농담처럼 웃으면서 하는 대화였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사실이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는 정대현이란 캐릭터는 솔직히 많지 않다. 소설은 소설일 뿐. 다만 내가 대한민국 남자들을 응원하고 싶은 건 시대가 변할수록 또 다른 “정대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이후 세대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이 되지 않을까. 다정한 아빠의 손길을 끊임없이 받고 자란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


 첫 출근을 했던 그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간은 6시. 퇴근 시간이었는데 아무도 먼저 가겠다고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힐끔힐끔 시계를 보고는 있었지만, 퇴근을 준비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더구나 남편 또한 일이 생겨 서울로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6시 20분쯤 되었을까. 같은 부서 사수가 내게 퇴근을 종용했다.


 “오늘 첫 출근인데 일찍 들어가.”


 일찍? 지금 6시 20분인데? 칼퇴근을 못 해서 마음이 바빴고, 차가 없어서 난감했다. 통근버스는 7시 반에야 운행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 시간까지 어린이집에서 엄마만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랑 같이 가실래요? 같은 방향인 것 같은데.”


 나는 거절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그런데 두 번째 장애물이 있었다. 퇴근길 정차. 차가 너무 막혀 15분 거리였던 집은 40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나는 차를 태워준 고마운 동료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또각또각 급한 구두 소리를 내며 어린이집으로 돌진했다. 그건 거의 슈퍼우먼 수준이었다. 구두를 신고 그렇게 빨리 뛰어 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호출하고 몇 분 뒤 아이가 너무나도 해맑은 얼굴로 “엄마!” 하며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결국 어린이집 입구에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미안해, 아들. 엄마가 돈 몇 푼이나 번다고 이 시간까지 너를 맡겨놓고, 세상에. 엄마가 진짜 미안해.”


 내 모습을 바라보던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가 생각보다 엄마도 찾지 않고 잘 놀았다면서 날 다독였다.


 “어머님 오늘 첫 출근이시죠? 처음이라 그래요. 익숙해지시면 괜찮아요. 아직 남아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요, 뭘. 맞벌이 다 힘들어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원장의 말대로 그날 이후 난 울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7시가 넘어가면 마음이 쓰인다.      

 얻은 게 있었다. 그건 경력단절을 해제하고 내 삶을 찾았다는 것이다. 일은 결혼 후 줄곧 내 로망이었다. 그걸 찾은 것이다. 대신 잃은 것도 있다. 아이와의 시간.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매주 주말이 되면 평일 5일을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난 아이와 최선을 다해 하루를 썼으며 다시 월요일이 돌아오면 난 자신감 넘치는 구두 소리를 내며 출근을 했다. 그리고 내가 첫 출근을 했던 3월, 도로연수를 마치고 운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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