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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복숭아 Aug 05. 2020

공포영화의 클리셰는 어떻게 합쳐지고 또 분리되는가

<캐빈 인 더 우즈>(2012)를 곱씹어보며

*이 글은 영화 <캐빈 인 더 우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 라는 표현을 벌써 세 번째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 이야기할 <캐빈 인 더 우즈>는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공포영화’다. (근데 문득 궁금해진다. 여러분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영화 정도는 있겠지요……? 나와 내 주위 사람들만 이러는 거 아니겠지요……?)     


문득 이 영화를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걸까 찾아봤더니 벌써 8년 전 영화다. 크리스 헴스워스가 막 라이징이었을 무렵. 심지어 지난 6월 17일에 재개봉을 했단다. 난 왜 놓쳤지? <캐빈 인 더 우즈>는 극장에서 본 영화는 아니다. 2013년 어린이날에 케이블 채널에서 해주는 것을 우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된 뒤에 이 영화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런데 왜 굳이 어린이날에 틀어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어린이용은 아닌데.


어린이날이라고 어떻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냐면 우연히 그 다음 달 현충일에도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상, 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매달 월과 일의 숫자가 중복되는 날마다 <캐빈 인 더 우즈>를 보기로 했었다. 5월 5일과 6월 6일에 보게 되었으니 7월 7일에도, 8월 8일에도, 9월 9일에도…… 실제로 2013년 9월까지는 그렇게 네 번은 본 것 같다. 그 이후에는 그냥 마음 내킬 때마다 지만.    


여하간 여름을 맞아! 가장 많이 본 ‘공포영화’를 가져오면서 이 영화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온갖 크리쳐가 떼거지로 나오는 영화라서? 맞다. 이 영화가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은 경쾌한 ‘띵’ 소리와 함께 약 1시간 15분 30초 대에 ‘파티’가 시작되는 때부터다. 하지만 이걸로는 뭔가 부족해.

  

참고로 여기서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애는 중앙 맨 위에 있는 노란색의 킬-봇Kill-bot이다.과연 최고의 기계주인님 월드컵에서 1위를 도삭면 로봇으로 꼽은 나다워.


참조: 중국의 도삭면 로봇(…)


한창 러브크래프트를 위시한 코스믹 호러에 빠져 있었는데 이 영화 또한 크나큰 주제에선 코스믹 호러를 말하고 있어서? 물론 그것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아니다.


<캐빈 인 더 우즈>는 흔히 알고 있던 공포영화 클리셰에 알리바이를 부여하고, 또 다시 클리셰를 깨부시는 영화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공포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왜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은 꼭 위급한 순간에 가장 멍청한 짓을 하는 걸까? 저 금발 여자애는 불필요하게 에로틱 움직임을 보이는 걸까? 왜 가장 나약해 보이던 여자애가 살아남는 걸까? 왜 이들은 도움 요청할 곳이 어디에도 없어 보이는 외진 오두막에 놀러가고, 저주받은 것이 틀림없는 수상쩍은 고서의 주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읊어보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사람의 머리는 억지로 합리화하려 든다. 이 영화는 그 합리화에 즐겁게 응답한다. 당위성을 억지로 부여하려던 우리들의 상상력을 가장 흥미로운 방향으로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클리셰를 깨부순다. 가장 먼저 죽을 것만 같던 ‘광대’는 끝까지 살아남아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 지옥 같은 조직의 수장은 나이 든 여성-그것도 아주 곱게 늙은 시고니 위버!-다. 영화의 엔딩에 다다를 때까지 주인공들은 세계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뜬금없는 키스신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결국 세계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과 함께 멸망해버린다. 엉망이 된 채로! 나로서는 이 모든 혼돈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래서 보고 또 본다. 볼 때마다 마음에 든다.


<캐빈 인 더 우즈> 영화가 나오기 전, 2009년에 뉴저지에 홈델에서 이루어진 나인 인치 네일스의 'Last' 라이브. 코로나 시대엔 이제 이런 공연 영상이 낯설다.


의외로 <캐빈 인 더 우즈>는 넷플릭스에 꽤 늦게 들어왔다. 그래서 본지 좀 오래되었는데, 이 리뷰를 쓰느라고 며칠 동안 켜놓고 살았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볼 때마다 새롭다. 그래서 유난히 눅눅한 이번 여름도, 숲속의 오두막집에 들어가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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