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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ind Mar 16. 2022

제 3의 장소

서평- 11장 적대적 서식지

-구질서의 잔해속에-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점주들이 시설을 사교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 냈기 때문이다. 어슬렁거리거나 빈둥거리거나 죽치고 앉아 있는 행위는 비공식적 공공생활의 핵심인데, 현대적인 가게와 공공기관 건물은 이제 그런 행위에 적대적이다"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는데에 큰 지분이 있다고 생각되는 가게는 만선호프다. 만선호프는 을지로 노동자들의 퇴근을 노가리와 맥주 한 잔으로 위로해주던 을지로 노동자들의 제 3의 장소 중 하나였다. 을지로 노동자는 아니지만 우연히 이 곳을 알게된 나는 여름철에는 매주 만선호프에 갔었다. 만선호프는 여름이 되면 가게 앞에 간이 테이블을 설치한다. 노상에게 개방감을 느끼며 보다 더 자유롭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자리에 앉으면 기본적으로 노가리 기본 안주를 내온다.(이 공간이 SNS에 핫한 장소로 떠오르고 난 뒤엔 변했다) 그리고 맥주 오백씨씨나 소주를 시키고 몇시간을 앉아 있더라도 눈치 한 번 주는 적이 없었다. 가장 목 좋은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잔에 기본 안주만 달랑 시키고 몇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어도 가게 종업원은 커녕 사장님도 눈치 한 번 준 적이 없었다. Z세대들에게는 인스타 인증용 '과거의 잔해'에 불과하겠지만 이 곳은 분명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장소'였었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닭장사회-

" 골드링은 텔레비전이 닭장 사회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강조한다. 

텔레비전은 거의 모든 사람을 집에 틀어박히게 만든다. 

그것은 집이라는 칸에 갇혀 있는 생활을 참을 만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여전히 지금도 나의 제 3의 장소 중 하나가 텔레비전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도 제 3의 장소일지 모른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제한되고 외출 하더라도 제한적인 교류가 많은 요즘은 넷플릭스 같은 OTT서비스가 제 3의 장소라고 은연중에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저자는 텔레비전이 닭장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지만 저자가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 본다면 텔레비전이, OTT서비스가 어쩌면 제 3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

" 현재 미국인은 여가 시간의 약 90%를 집에서 보낸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일까? 아니면 예전에는 집 밖의 세계에서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얻을 수 있었던 우정을, 이제는 더 이상 편안하고 저렴하게 얻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까?"


20대의 나는 집에서는 잠만 잘 정도로, 또는 잠도 잘 자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나만의 제 3의 장소에서 보냈었다.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린 후에는 어느새 집 밖보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고 제 3의 공간을 찾지 않게 된 것인지, 어느샌가 제 3의 공간이 사라져서 나만의 공간을 찾게 된 것일까?


-단일기능기반 도시계획의 폐해-

"동네 공터에서 수시로 하던 공놀이는 조직화된 유소년 야구단으로 대체 되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뒤뜰에 본부를 차려놓고 놀았지만, 

이제는 만들기 수업을 들으러 가야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동선이라고 생각했었던 요즘 삶의 동선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때는 동네 공터가 야구장이면서 축구장이었고, 영화관이면서 광장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네에 오직 한 가지 기능의 장소만이 존재하고 그 곳을 찾아 유목민처럼 이동한다. 복합문화쇼핑몰이라는 장소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하는 행동은 단순하고 목적없는 행위들이다. 의식하지 못했던 사이에 획일적인 도시계획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환경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피해자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 부터가 아닐까? 


-제인 애덤스의 불만-

"옛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시민들이 일을 마친 후 지역사회에서 친구나 이웃들과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이때 집에서 머무르는 것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는 안된다는 정책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때로는 '집에서 먹는게 싸다' 라는 생각도 들고  어느날은  '사 먹는게 싸다'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점점 생활물가도 오르고 단조롭고 부담스러운 외식문화가 확산되면서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구세주처럼 '수입맥주 만원에 네 캔'이 등장했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만 않으면 만원에 네 캔을 사서 한강이나 집 근처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책을 읽으며 돌이켜 보니 제인 에덤스의 불만을 나도 가지고 있었고 그 불만을 자연스레 해소시켜 준 것은 맥주 수입사의 저렴한 공급가였다. 

만원의 네 캔이 가능했기에 더운 여름날 나만의 제3의장소가 옥수 나들목의 벤치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한 비용-

"돈이 들지 않는 여가활동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원하고, 필요로 하고, 기대하는 것들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상업화 되어 이제는 그 비율이 무서울 정도다 " 


집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고민을 하고 시간을 내어서 약속을 잡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다. 친구들과 집 밖으로 나가면 숨만 쉬어도 다 돈이다 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 받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자영업자들은 손님들을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하 '호구' 쯤으로 취급한다. 호스트와 게스트의 관계가 제 3의 장소가 되기는 어렵다. 이런 세상에서 나만의 제 3의 장소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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