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계의 제페토 할아버지를 찾아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명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명장 : 명장1(名匠)「명사」 기술이 뛰어나 이름난 장인
명장2(名將)「명사」 이름난 장수
명장3(明匠)「명사」 「1」 학문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
그 중 '기술이 뛰어나 이름난 장인'에 해당하는 명인은 나에게 아래와 같은 이미지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작업할때에는 매서운 눈길로 융통성이 없을 만큼 자신만의 작업방식과 철학을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인형에 생명을 불어 넣었듯이 말이다.
출처: 제페토 나무위키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나에게 제페토 할아버지가 모여사는 마을같은 곳이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서울시 성동구 성수역 2번출구에서 뚝섬역 4번출구 사이의 수제화를 위해 특화 조성된 거리를 말한다. 지하철 노선을 중심으로 수제화 매장들이 줄지어 있기 때문에 흔히들 이 곳을 수제화 거리로 부르지만 보다 더 큰 의미로는 아래 붉은점의 공장과 매장들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이 곳에 바로 내가 생각한 제페토 할아버지들이 모여산다. 이따금씩 성수동을 방문할때 보이던 지하철 아래의 구두가게 창문 넘어 구두공들의 모습은 분명 제페토 할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시대에 살짝 뒤쳐진 듯 하지만 만듦새가 꼼꼼한 구두들이 전시된 가게 안팎의 투박한 진열대와 그 뒤로 보이는 소박한 매장안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듯한 손때묻은 도구들 사이로 작업에 집중한 백발의 구두공들.
그리고 수년에서 수십년된 단골들이 아무때나 편하게 드나들고 지나가던 사람들과 허물없이 인사를 나누는 그런 구두공들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기대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에서 구두명장들의 구두를 만나기는 무척 쉬운 일이다. 하지만 구두공들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개 인근 공장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출장을 나가거나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하철 출구앞에는 수제화거리에 대한 홍보판이 잘 조성되어 있고 거리 곳곳에는 수제화 구두관련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서 사정 정도없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이 장소가 수제화와 관련된 곳임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
거리의 중간중간 수제화거리에서 일하는 구두공들과 관련업 종사자, 방문했던 셀럽들의 핸드프린팅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아래 인근 가게에서 버린 매장 쓰레기 봉지가 놓여져 있어서 수제화 거리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거리 자체를 관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나의 제페토 할아버지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계시는 걸까?
성수동 수제화거리에는 수제화를 발전시키고 구두공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이 존재한다. 그것도 여러개가 존재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공동체는 아래 두개의 협동조합이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은 2013년 구두 디자이너 출신의 젋은 이사장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현재까지 협동조합 홈페이지가 존재하고 있고, 성수 수제화거리 구두공들에게 협동조합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다. 두번째인 서울성수수제화생산협동은 노동 운동가 주도로 설립되었고 성수동 일대 11개 업체가 모여 설립되었다. 2014년에 마을기업으로 운영되기도 했고 에스 쿱 이라는 자체 브랜드가 있다.
다음으로는 성동제화협회가 있다. 성수동에 위치한 380여개 업체가 모여 설립되었고 13년 한국제화아카데메를 설립했고 같은 해에 서울시와 함께 성동수제화타운을 설립했다. 이곳 역시 '구두와 장인'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수제화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동체 중 하나로 제화노조가 있다. 하청업체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두산업의 불합리한 관행과 열악한 처우를 세상에 알리고 사측과 교섭을 했던 이력이 있다.
최근 수제화거리 구두공이 만든 협동조합도 있다. 2019년 설립된 수제화사제공유협동조합과 사단법인한국기술인협회는 성수역 2번 출구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아빠는 구두장이' 매장 대표가 만든 공동체다.
수제화 거리의 공동체가 이처럼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유는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공동체의 주체를 보면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성수동 수제화거리에는 구두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구두공들이 일했었고 물건을 납품했었던 공장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업체는 주로 에스콰이어나 탠디, 코오롱과 같은 대기업의 구두제작을 하청받아 운영되었다. 이러한 사업구조에서 소위 배운것 없고 빽도 없는 하청업체들이 대기업에 맞서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노동운동가들이 성수동 구두거리에 들어오게 되고 그들 중심으로 제화노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서울시와 협력관계의 제화협회가 만들어지게 되고 서울시의 주도로 수제화 관련 교육기관과 관련 프로그램이 생기게 된다. 노동운동가와 사업체 운영자, 서울시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단체들이 지금까지 서울시 수제화거리의 공동체를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서울시와 성동구가 자랑스레 홍보하는 구두명인, 수제화 구두공 중심의 공동체는 2019년 설립된 수제화사제공유협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초기에 성수동에 구두관련 종사자들이 모이고 노동운동가들이 그들을 돕고 이후에 사업체 운영자와 구두공들, 관련 종사자들 등의 당사자들끼리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구두공들은 모두 하나같이 서울시가 너무 빨리 개입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제화거리는 구두공들의 것이 아닌 서울시 공무원들의 것이란 말을 하기도 한다. 하나의 거리에 이처럼 다양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데에는 분명 서울시의 시정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은 성급함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공동체가 필요했을 것이고 입장차이가 있는 구두공들을 자연스레 밀어냈을지도 모른다.
성수동 수제화거리 뚝섬역 방향에는 한용흠 명장이 운영하는 구두수선 가게인 수제화 공동판매장 2호점 E매장이 있다. 매장외관은 다른 매장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눈에 띄지도 않고 어딘가에서 줏어온 듯한 나무판에 매직으로 적어놓은 명장 간판은 오히려 명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매장앞에 잘 보면 빅뱅의 사진이 있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때 유행했던 징이 화려하게 박힌 하이탑 운동화가 전시되어 있다. 사실 알고보면 빅뱅이 전성기때 콘서트에서 신었던 신발이다.
심지어 GD가 뮤직비디오에서 신었던 신발도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알고 보면 한 번은 꼭 찾아가 볼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한용흠 명장은 한때 일본인 관광객들이 어떻게 알고 오는것도 귀찮아서 빅뱅 사진만 기념으로 붙여 놓았다고 한다.
한용흠 명장은 주로 구두수선을 한다. 이유는 본인이 가장 자신있고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이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장의 매장을 방문한 두어시간 동안 꾸준히 문의 전화가 왔다. 주로 오래동안 신던 명품 구두에 대한 애정으로 더 오래 신고 싶은 사람들의 구두 수선에 대한 전화였다. 위 사진의 붉은 구두도 20여년 넘게 신은 명품구두인데 지방에서 고객이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 아래의 구두들도 명장의 소문을 듣고 젋은 여성 고객들이 맡긴 것이라고 했다.
40여년을 구두를 만들었다는 명장은 중학교도 겨우 졸업했다고 했다. 한글을 제대로 배운게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라고 하면서 성수동 구두거리에서 구두 만드는 사람들이 대개 비슷한 처지라고도 했다. 단순히 명장의 겸손함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재미난 물건을 발견했다.
명장은 영어를 모르신다고 했다. 그래서 명품 구두 수선문의가 들어오면 로고와 철자를 이미지로 기억하고 고객과 소통을 위해 발음은 한글로 적어놓았다고 했다. 구두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명장은 독특한 디자인의 신발 제작에 뛰어나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패션쇼에 나갈 구두로 꽤 오래 만들었다고 했다. 아래의 구두가 기념으로 보관한 구두 중 하나라고 했다.
수제화 구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구두 제작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공정을 혼자서 다 해내는 완전 조립공, 슈마스터와 일부 과정의 공정을 해당 부분의 전문가에게 맡겨 그 부분의 재료를 받아 '구두를 '조립'하는 부분 조립공으로 나뉜다. 성수동 수제화거리의 구두공, 구두명장들은 사실 후자인 부분 조립공에 해당한다.
FromSS A동 8호 아빠는 구두장이 매장을 운영하는 박광한 대표는 성수동 수제화거리 유일의 완전조립공, 슈마스터다. 매니저인 아내와 함께 구두매장 겸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신발에 관한 특허도 여러개 가지고 있을 만큼 수제화 구두에 관해서는 공인된 전문가이기도 하다. 박광한 대표는 사람의 발에 매우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수제화가 반드시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발도 함께 늙어간다고 한다. 그렇기에 일정한 틀에 맞춰 생산되는 기성품들은 건강에 좋지 않다며 수제화가 반드시 신발산업에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철학으로 수제화가 특히 중요한 장애인이나 피켜스케스팅과 같은 운동선수들의 신발을 제작해 주고 있다고 한다. 방문한 날에도 발 모양이 독특한 자녀를 데리고 방문한 가족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13년도부터 수제화거리에서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위 사진의 흡연실은 예전에 방치된 자전거로 가득했다고 한다. 박광한 대표의 꾸준한 민원으로 방치된 자전거가 사라지고 공간활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앞 공간의 화단도 구청에 지속적인 의견제시로 설치가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박광한 대표는 수제화 구두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성수동 수제화거리에 대한 애정도 무척 크기에 지난 10여년간 성동구와 서울시청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제관계라고 했다. 이 곳 구두공들의 태반은 7년이내에 은퇴를 할 나이인데 현재 수제자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라고 한다. 수제화 거리에 사제관계가 중요함을 구청과 시에 지속적으로 건의했지만 소용이 없자 본인이 직접 현수막을 제작해 수제자 및 구두제작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수제화거리의 구두공들은 구두 하나만큼은 너무나 진심이었다. 매장을 방문해서 수제화거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면부지의 내게 손님도 대충 물리치고 구두에 관해 열정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된 결론은 구두공들은 기본적으로 구두만 알기에 다른 것으로는 뭉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사업체 중심으로 이뤄진 협동조합이 구두공들을 대변하고, 구청이나 시청에서 구두공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수제화 관련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아쉬움과 분노를 함께 표현했다. 구두공들은 체감할 수 없는 전체의 이익보다는 당면한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서 단체를 조직하고 미래의 이익을 위한 논의가 어렵다는 것이다. 만난 대부분의 구두공들은 대체적으로 그런 의견에 동의했다. 본인들조차도 구두를 만들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구두를 만들어 주겠지만 협동조합장을 하라고 하면 운영진 두세명을 붙여주지 않는 한 골치 아파서 하기 싫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성수동 유일의 슈마스터인 박광한 대표가 수제화 명맥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수제화사제공유협동조합은 2019년에 설립되었지만 아직 조합원들도 많지 않고 많은 구두공들이 수제화 명맥을 잇는 미래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나라에서 지원중인 사업에 구두공들이 많이 제외되어 있고 의견 또한 전달이 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구두공들의 불만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는 성수수제화 지원 사업이었다.
성수수제화 활성화 사업은 서울특별시 지원 사업으로 2020년 3월부터 위탁기관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21년 사업예산은 12.2억으로 공간운영, 발굴육성, 판로지원, 홍보마케팅등의 사업을 한다. 사업총괄PM, 운영총괄PM등 9명의 매니저가 운영중이다. 수제화아카데미도 이곳에서 운영중이다. 이 사업의 운영진에는 구두공 출신이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아카데미 강사 마저도 구두공 출신이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제화거리 구두공들은 입을 모아 이곳의 활동은 본인들과 상관도 없고 이곳에서 하는 것들은 가짜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을 함께 이야기한 것이 기존의 협동조합이기에 협동조합에 대한 불신도 매우 큰 상태였다.
촌스러운 입간판이 정겨운 매장앞에는 작은 의자 두개가 나란히 있다. 하나는 가게 주인의 의자, 남은 하나는 아무나 와서 앉으라고 둔 의자라고 하면서 매장에 들어서서 성수동 수제화거리에 대해서 여쭤봐도 되냐는 나를 파란색 포장마차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마치 조카를 만나신 것처럼 스스럼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혹시라도 영업에 방해되니 다른데 가보란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언제 말을 끊고 헤어져야 할지를 걱정할 정도로 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중간에 구두수선에 대한 문의도 오고 매장에 손님들도 찾아왔다.
손님들은 주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단골손님들이 많았다. 주로 문을 손님들이 먼저 예전에 몇번 왔었는데요 라면서 자신의 구매이력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두공들은 몇가지 단서만 가지고 금세 단골 손님을 기억해 했고 그들의 요구를 단박에 캐치해서 매우 빠른 시간에 수선 접수와 문의가 마무리 될 정도였다.
처음에 협동조합에 대한 문의를 하자 '이곳에 협동조합 같은건 없어!' 라고 단박에 잘라 말하던 구두공이었지만 대화가 길어지자 다양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중 하나가 봉사단에 대한 것인데 14년부터 봉사단을 조직해 다양한 곳에 봉사활동을 다닌다고 했다. 대화 중간중간 본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구두매장 사장님들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구두공들은 비록 정치적인 공동체는 없지만 수제화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있고 해당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봉사단을 하기도 하고 공동체의 추천으로 명장 시험을 보기도 하고 관련 대회를 만들어 참가해서 수상을 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꽤 긴 시간동안 수제화거리에는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고 수제화 거리의 발전을 위해서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젊은시절 구두 만드는 유일한 사진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때 권투를 했었고 100키로를 가볍게 들었다는 무용담과 함께 갑자기 꺼내서 보여주신 서울대인명록을 통해서 동생분이 서울대 공대 85학번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밥때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밥을 먹자며 인근 식당으로 데려가 제육볶음을 사주셨다. 구두에 관심이 많고 동생과 같은 학교니 동생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밥먹고 커피도 한 잔 하자면서 다시 매장으로 돌아와 손 때 묻은 물건들 하나씩 설명해 주시기도 하고 매장에서 이것저것을 구경해 보라고도 하셨다.
비록 정치적으로 본인들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제 3의 장소로서 수제화거리는 각각의 매장이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차가운 표정과는 달리 매장에 들어선 사람에게는 절대 불필요한 판매를 하지 않는 모습을 주로 볼 수 있었다. 용산이나 동서울의 전자상가들이 판매자들의 무분별한 상업행위로 몰락한 것과 달리 수제화거리 구두공들은 구두에 관해서는 매우 정직했고 본인들이 할 수 없는 것, 불필요한 것이면 딱 잘라 거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적인 예로 구두 수선을 맡기로 온 손님의 구두를 보더니 거의 문전박대 하듯이 내 보내는 모습을 보고 굳이 돌려 보내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수선비가 신발값보다 더 나오는 건은 굳이 손님한테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은 필요한 만큼만 벌면 되니 좋은 명품 구두를 잘 수선해서 손님들이 좋아해주면 그걸로 하루 기분좋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소위 말하는 역세권이다. 접근성이 매우 좋다. 하지만 구두공들의 나이가 많은 탓에 매장을 구경하기만 하지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구두를 사거나 수선하러 와 본 사람이라면 오며가며 구두공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아는체를 하고 지나갈 만큼 단골형성이 잘 되어 있었다. 특히나 구두공들은 구두와 본인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의 방문이라면 몇시간이고 시간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매장에는 화려하고 편한 의자나 쇼파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낯선이의 방문에도 가족사까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듣는 사람의 마음 또한 무장해제 되면서 무척이나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
수제화 거리는 그곳을 지나다니면서 매장의 겉만 구경했을때에는 결코 제 3의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제 3의 장소가 되었다. 매장 아무곳이나 가서 구두에 관해 아무것이라도 한 가지만 질문 해 보면 어느샌가 매장 한 켠에 앉아 사장님이 타 주는 믹스커피를 마시며 수제화 구두의 역사부터 젊은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방문 이후에는 구두 살 일도 수선할 일도 없지만 성수동에 가게되면 마실거라도 간단히 들고 지나가다가 한 번 찾아뵈어야지 하고 저절로 생각이 날 것이다. 낮은 문턱, 소박한 가게, 각각의 개성을 가진 사장님들, 지하철과 대로변의 쉬운 접근성, 그리고 손님 위에 서지 않으려는 수평을 지향하는 태도. 이만한 제 3의 장소를 찾기도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