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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수 May 23. 2024

[Epilogue]

미숙한 나를 응원해준 환자, 우리 어머니

나는 늘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들이었다. 



 앞서 내 글을 모두 읽었다면 자녀가 있는 분들은 느꼈겠지만, 나는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있어서 늘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아들을 키우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나도 조금씩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든다.




 때는 누나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혼주로 결혼식장에 서기 겨우 몇 달 전이었다. 이걸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당시의 내게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중요했던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당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임상 조교수로 근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학을 떠나 개원가로, '메인 스테이지'에서 경쟁하고 싶다는 결심을 조금씩 굳혀나가는 중이었다.


"가진 게 망치밖에 없는 사람의 눈에는 못밖에 안보인다."


 그때 나는 이 말을 기억해야 했다.



 '메인 스테이지'로 나갈 결심을 하기 전, 나는 세브란스 병원 내에서 눈 수술(상안검, 하안검)로 소소한 명성을 쌓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명성'이라는 말을 붙인건 그냥 농담이고 대학 병원에서 청소하는 이모님들, 그 분들의 친구분들, 수술 어시스트를 해주던 간호사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친구분과 같은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입소문이 났고, 그 안에서는 꽤 유명한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것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햇병아리에 불과했던 내가 개인마다 적합한 수술법 같은 것을 잘 알리 없었고, 그저 배운대로 조심조심 수술을 했던 게 다행스럽게도 좋은 결과를 낳았던 것 같다.


 조심스러움이 미숙함을 이겨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다시 떠올리면 너무나도 낯뜨거운 '명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이 소소한 '명성'이 진짜 내 실력이라는 착각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눈이 처져서 늘 고민이셨던 어머니를 겁도 없이 수술방으로 모실 정도로 말이다.



 다행히도 어머니의 수술 자체는 무사히 잘 진행되었다. 문제는 수술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어머니가 고민이시던 눈의 처짐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것에 있었다.


그리고 가진 게 망치밖에 없던 나는 겨우 두 달 남은 누나의 결혼식보다 눈 앞의 못이 더 시급해보였다.




 모든 일에 만약은 없다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어머니를 환자로 만난다면 무조건 수술 후 3개월 이상은 기다리시게 하고, 피부 절제가 부족해서 처짐에 대한 개선이 미비한 경우라면 '눈썹하거상'이라는 대안이 있으니 여러 선택지를 두고 재수술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숙한데다 실력에 대한 자만까지 있던 그때의 나는 시야가 너무 좁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다시 수술대에 누우셨고 나는 어머니께 갚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두 달 후, 누나의 결혼식날 혼주로 손님을 맞으시는 어머니의 눈은 당연하게도 아직 수술 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눈이 왜 그러냐고 물을 때마다 어머니는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셨을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회복이 되셨을 때에 가서야 겨우 용기를 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 내게 어머니는 괜찮다며 손을 어루만져 주셨다.


 그때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눈이 처지게 된 것도 그동안 나 때문에 흘린 눈물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가진 게 망치밖에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후로 어머니는 회복되셨지만 나는 여전히 눈 수술을 할 때면 마음 한켠이 먹먹하다. 오늘도 두 건의 상안검, 세 건의 하안검, 그리고 두 건의 눈썹하거상을 하면서 계속 그때 내 손을 잡아주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내가 '리프팅'을 통해 환자의 가장 행복했던 '어린 날'을 만나게 해주는 의사가 되고자 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과 죄송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만난 환자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속상한 순간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며, 나는 모든 수술을 가장 완벽하게 끝내고자 노력한다. 


 시야를 넓히기 위한 연구와 공부, 토론의 시간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내가 '리프팅'을 통해 최대한 환자의 '어린 날'을 돌려주는 것만이, 미숙한 의사였던 나를 만났던 어머니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은 하루를 정리하고 퇴근하며 우리 어머니, 아니 엄마한테 안부 전화를 하고싶다. 늘 용기를 내 진심으로전하는 말을 하기 위해.


"어머니, 죄송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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