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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감인간 Oct 19. 2023

아이의 기쁨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비영리 인간이 돈을 벌고 싶을 때

저는 영리(營利)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공동의 이익이 먼저라고 자꾸 되뇌였어요. 아마 어릴 적 '국제기구'에 대한 선망이, 제 무의식 속에 '공익'이라는 가치로 자리매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청소년기 때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기이하고 전시성이 짙은 TV 프로그램 '기아체험 24시'를 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지만 도울 여력이 된다면 돕고 싶었던 거 같아요. 이러한 한 톨만 한 마음이 '꿈'과 맞물리니 세계를 무대로 뛰고 싶더라니까요.


저는 지금 한국에 삽니다. 해외에서 가장 길게 체류한 건 이런저런 이유로 고작 넉 달이 전부네요. 하지만 여전히 저는 영리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거든요. 제 삶의 궤적은 '비영리'로 시작해 '비영리'로 이어집니다. 비영리 영역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가족이 생기고, 아이를 낳고 보니 그냥 돈 좀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불쑥 솟아오릅니다. 열심히 일해서 학자금 대출도 갚았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는데, 왜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없는 걸까요.


비영리 생활이 싫지 않아요. 임금이 낮은 대신 한 달 가까운 연차를 쓸 수 있고요. 눈치 보지 않고 무조건 씁니다. 휴직과 단축근로도 환영이고, 정시 퇴근은 당연합니다. 업무 강도도 그렇게 세지 않아요. 누군가는 말하겠죠. "돈 받는 만큼 하는 거"라고. 아니면 "그 급여 받는 거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아이를 낳고 나니 균열이 생겼어요. '대신'이라는 말로 제 욕망을 잠재우기 어렵더라고요. 따지고보면 정시 퇴근, 각종 제도, 연차는 원래 합법적으로 누려야 할 몫이잖아요. 물가상승률은커녕 턱 없이 낮은 임금은 삶을 팍팍하게 만듭니다.


돌파구를 찾긴 합니다. 소소하게 부업도 하고요. 매달 가계부의 예산을 세우고, 소비와 지출을 적정한 비중으로 맞추고, 수입의 절반 이상 저축하고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소고기를 호주산 살까, 국내산 살까. 이번 달 동물원 가는 건 이미 나들이 예산을 모두 소진했으니 다음 번에 가자는 등. 이러한 고민이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답답함으로 바뀝니다. 아이에게만큼은 '가장 좋은 것'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한계와 제약사항이 있다는 건 아이가 당연히 배워야할 부분이지만, 부모로서 돈 때문에 '경험'을 거세하는 일이 잦아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네요.


돈으로'만' 경험을 살 수 없지요. 우리에게 대안이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와 흐드러진 꽃, 잎이 무성한 나무, 축축한 흙까지.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과 정서적 교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현재(!) 맞벌이 위치에서 바라본 경험은 '돈'으로 사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게으른 판단인가요) 그리고 저는 욕망을 감추는 데 능한 사람이더라고요. 안 그런 척, 안 본 척, 아닌 척. 사실 한 번쯤은 마음에 드는 가구 하나 사고 싶었고, 한 번쯤은 마음에 드는 옷 한 벌 사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무엇이든 사지 않고, 억누르는 게 제게 걸맞은 모습이라고 여겼던 것 같네요.


아이는 제가 해진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어도 자동차 이름을 하나씩 말해주기만 한다면 언제나 방긋 웃습니다. 기쁨은 멀리 있지 않은데, 제가 자꾸 그 기쁨의 모양을 빚으려고 하는 걸까요. 아이의 기쁨을 사고 싶다고 말했지만 기저에는 '돈 버는 데 능력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여튼 저는 '돈 좀 벌고 싶다'라는 말을 이렇게도 에둘러 말하는 걸 보니 아직 멀었나 봅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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