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전에는 모든 게 뛰어야 할 것 만 같다.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스페인 마드리드(Madrid)에 위치한 마덕리 알베르게에 묵었다. 나도 내가 산티아고길을 '정말' 걸으리라곤 장담하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석 달간 여행길에 올랐을 때, 그 석 달을 스페인에 '올인'하기로 했을 때 막연하게 걸으면 걷겠거니 했다. 정말 장장 800km가 되는 그 길을 내 발로 한 걸음씩 걸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실감나지 않는 일을 무작정 벌이고 나면, 막상 시작하기 전까지 더 실감이 나지 않나 보다.
여행의 막바지, 마드리드에서 팜플로냐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마드리드에 위치한 한인 알베르게로 향했다. 그 곳에서 이틀 간 머물렀다. 이미 무더위를 뚫고 길을 마친 이들이 있었다. 발목과 종아리에 파스를 붙이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는 분, 얼굴 한 번 스치듯 봤는데 그 다음날 새벽 홀연히 사라진 분, 너구리 라면을 삼시세끼 끓여 드시는 분 등 지하철 몇 정거장만 가면 화려한 마드리드 솔 광장이 있는데, 알베르게를 떠나지 못하는 분들이었다.
걱정됐다. 나는 튼튼하지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미 두 달 간 여행하던 터라 '산티아고 순례길'을 위한 짐도 거의 챙겨오지 않았다. 침낭과 걸을 때 쓸만한 장비들을 현지에서 살 수 있으면 산다는 안일한 생각. 막상 그 곳에서 길을 마친 사람들을 마주하니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냥 걸으면 되냐고 묻자 길 따라 걸으면 된다고 답한다. 같이 방을 쓴 분(침낭사람)은 초면인데도 자신이 쓰던 침낭을 빌려줬다. 또 다른 분은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험한 산길을 함께했던 등산 스틱을 빌려줬다.
(등산 스틱은 졸지에 두 번 산티아고길을 걷게 되는데...)
알베르게 주인 아저씨는 알고 보니 <까미노 데 산티아고 여행안내서>의 저자 윤태일 씨였다. 나는 그때 존 브리얼리의 <산티아고 가이드북>을 들고 있었다. 아저씨는 쿨했다. 맨 땅에 헤딩하며 무역업에서 종사하던 시절, 무작정 스페인으로 떠나와 정착하기까지 의 우여곡절 등을 '우연히' 들었다. 이 때도 너구리 라면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나는 너구리를 가장 좋아한다. 오동통하니까.) 역시 여기든 저기든 삶을 일구는 건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아저씨는 퇴근하고 알베르게에 들러 머무는 이들과 어울렸다. 맥주 한 잔 하고 가기도 하고, 같이 축구를 보기도 했다. 매년 걸을 수 있을 때 산티아고길을 걸으며 숙소나 현지 상황을 업데이트한다고 했다.
맥주를 한 잔에 둘러 앉은 사람들은 서로 경험담을 쏟아냈다. 그 곳에서 앞으로 걸어야 할 사람은 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11월이면 춥고 사람도 많이 없어 괜찮겠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있었고, 그래도 '길'이 다 해결해줄 거라는 낙관의 목소리도 있었다. 침낭사람은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컥함'이 올라왔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길 들으며 나도 뭔가 내심 '울컥'하길 기대해봤다. 결론은 사람들을 따로 걸었지만 나도 아는 그 길을 당신도 걸었다는 데 굉장한 공감대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나도 (무사히) 걷고 나면 그 공감대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떠나기 전날 저녁 다시 한번 너구리를 끓였다. 밥도 말아 먹었다. 동계 시점이라 파리 생장까지 가려는 교통편이 쉽지 않아 결국 팜플로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출발은 다음날 새벽 6시였다. 새벽 2시까지 침낭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2층 침대에 누워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돌이켜보니
역시 티끌모아 걱정이었다. 침낭사람 말마따나 길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침낭사람의 침낭은 정말 좋은 침낭이었다. 가볍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길을 걸은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찬양한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33일간 함께 한 침낭도 찬양한다. 침낭을 펼치고 개킬 때마다 침낭사람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귀국해서 침낭사람에게 침낭을 택배로 보내며 책 한 권도 함께 보냈다. 침낭, 잘 지내겠지?
까.친.연 알베르게가 지난 5월 위치 이전 및 홈페이지를 재단장했나 보다.
한국 까친연 마드리드 숙소 http://cachinyeon.wix.com/mad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