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30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 대구에서 태어난 내가 열 살 때 이사를 해 스무 살이 되기까지, 10년 가까이 살았던 곳이다. 처음으로 삼척에 발을 디뎠던 날, 눈물을 찔끔대며 앞으로 다닐 초등학교까지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우리는 왜 대구에서 여기로 이사를 왔느냐며 따지듯이 묻기도 했다. 적어도 여기보단 대구가 훨씬 컸고, 버스와 사람과 볼거리도 많았고, 심지어 동물원까지 있었는데! 있던 게 이제는 없으니까, 그게 좀 서러웠다.
그 이후로는 겉으론 범생인 척했지만 속은 폭풍 방황 중이던, 그런 사춘기를 보냈다. 초, 중,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십오 분’으로 늘 일정했고, 방향은 달랐지만 매번 비슷한 풍경 위로 느릿하게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깜깜해지는 시내. 딱 하나 있던 영화관도 사라져서 영화를 보려면 동해를 가거나 강릉을 가야 했던 곳. (최근에 영화관이 하나 생긴 걸로 안다.) 삼척의 작음에 관한 나름 유명한(?) 일화는, 시내 가장 정중앙에 있는 우체국 앞에서 “시내가 어디예요?” 묻는 한 관광객이 있었다는 것.
레이디버드도 미국에 있는 작은 시골 동네에 산다. 대학생이 되기 직전의 나이를 몸소 겪는 중이다. 내가 정한 것보다 이미 정해진 게 많아서 어떻게든 다음만큼은, 적어도 이 다음만큼은 내가 정하고 싶은 때. 지금 있는 장소와 내 마음의 정도가 삐걱거리기 일쑤라, 얼른 나만의 꿈같은 장소를 찾고 싶은 때. 레이디버드는 매 순간 뉴욕을 가고 싶다 말하고, 실제 그렇게 하려 든다. 그런 그녀에게 부모와의 갈등이야 뭐, 공기 같은 일이다.
내가 레이드 버드와 비슷했던 나이에 어땠더라. 생각해보면 글쎄, 딱히 거창하거나 돌발적이라거나 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일탈이라곤 고등학교 2학년 때, 여름방학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두 달간 합기도를 다녔던 것. 물론 나는 왜 패션잡지의 힙한 모델처럼 생기지 않았는지, 왜 그런 몸매가 아닌지를 생각하는 일이야 늘상 있던 일이다. 오로지 나뿐이었던 내 세계에 타인의 시선이 물밀듯 밀려왔던 때였다. 이성에도 눈을 떴다. 잘생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엔 눈을 반짝였다. 이성과는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여중-여고 테크를 타서 영 그럴 수가 없었고, 남자 친구가 벌써 있는 친구들에게 대체 어떻게? 생각하면서도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그런 인터넷 소설을 읽으며 ‘바보처럼 굴어도 여기저기서 좋아한다고 난리인 잘 나가는 여학생'의 라이프를 흠모도 했다. (물론 그런 학창 생활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레이디버드가 당돌하게 해냈던 것처럼, 부모님이 정해준 이름이 싫어 스스로 예명을 지은 적은 없고, '서울에서 살기'를 열렬히 꿈꿔본 일도 없다. 레이디버드처럼, 내가 사는 집이 부끄러워 삐까뻔쩍한 그 집을 두고 ‘내가 사는 그 집!’이라 거짓말한 적 역시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그런 건 분명 있었다. 막연하게라도 어쨌든 나는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 가능하다면 아마도 서울이겠지, 하는 정도로. 삼척의, 내가 살았던 동네에 그럴싸한 아파트들이 서서히 생겨날 땐 우리 집은 참 잘도 작네, 생각도 했다. 경제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숨기거나 모른 척한 일이야 부지기수. 대놓고 마주쳤는데도 모른 척할 만큼은 또 안 되어서, 눈치는 챘지만 눈치채지 못한 척 자연스레 지나친 일들이 많았다. 아빠가 몰고 다니는 파란색의 낡은 트럭이 부끄러워서, 지각할 것 같은 날 어쩔 수 없이 차에 타야 했을 때. “학교 바로 앞은 북적거리니까 조금 더 가서 내려줘.” 그렇게 말한 적도 있다.
이런 기억들은 사춘기에, 자신과 제 주변의 것들을 유달리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익혀온 이에겐 익숙할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이 꿈꾸는 내 모습에 비해 한참 모자란 것 같을 때. 나를 계속 여기에 있게 하는 가족과 장소, 집에는 자그마한 앙심을 품게 되는 것. 멀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드는 것. 아마도 그런 마음은 사는 동네가 촌스럽고 작아서 그랬다기보다는 그곳에서 사는 내 마음이 요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삼척은 뭐랄까. 내 꿈과 내 현실이 삐걱대기 일쑤였던 그 당시, 내 현실을 알게 하는 장소였다. 내 마음이 요만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장소.
영화 <레이디 버드>는 '요만한 내 마음'을 너무 고대로 전시해 내보이는 영화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지니고 있는 기억들 덕에, 레이디버드에게 유독 공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그녀가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았던 순간에, 더욱 그랬다. 두 사람이 최고조로 갈등하는 사이 나는, 자꾸만 우리 엄마와 내가 생각이 났다.
나는 열아홉 살이었다. 어떤 대학에 지원해야 할지, 앞으로의 미래를 이제는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던 때. 나는 성적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서울에 지원은 해볼래! 그런 마음이었는데 엄마는 엄마는 그냥 여기에 있는 대학을 가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그럼 이 집에서 계속 살면 되니까, 월세라든지 하는 돈도 따로 들어가지 않을 테고, 우리 매일 볼 수 있잖아. 경제적인 문제에 더해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장소에 오래 머물고 싶었던 엄마의 입장은 그런 거였다.
그때 나는 조금 색다르게 충격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부모들은 대체로, 특히 고3의 자식을 둔 부모들은 가능하면 자식이 인 서울, 또는 어쨌든 지금 여기보다는 더 나을 수 있는 곳에 가기를 바란다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을 하며 충격을 받았었는데, 한편으로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것도 있었다. 나에게는 ‘느리고 적막한 데다 까딱하면 도태될 수도 있는 곳’이었던 삼척이 엄마에겐 ‘가족이 매일을 함께 삶을 꾸려가는 곳’이었다는 걸. 그리고 각자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빗겨나갈 때, 각자의 현실이 서로에게 다른 의미로 중요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하지만 가족, 특히 부모는 어쨌든 자식에게 져줄 수밖에 없는지. 레이디버드는 결국 뉴욕으로 향했고 나 역시 지금 삼척에 있지 않다. 꿈꾸던 뉴욕에 도착한 그녀에게 '꿈꾸던 나'로서의 삶이 찾아왔을까. 의미심장하게도, 내내 자신을 '레이디버드'라 소개하던 그녀는 영화 말미 뉴욕에서 스스로를 '크리스틴'이라 소개한다. 처음으로 스스로를 본명으로 소개하는 순간이다.
이후, 크리스틴은 잔뜩 취해 거나하게 토를 하고, 병원에 실려가고, 퇴원한 후로는 낯선 뉴욕 거리를 하염없이 걷는다. 잠깐은 가족에게도 전화를 남기면서. 이미 떠나온 장소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프레임을 메운다. 그건 가장 익숙했던, 그래서 당연했고 또 자연스러웠던 가족과 장소가 이제는 곁에 없다는 데서 오는 공허함일 수도 있겠고, 혹은 그 어느 곳도 내가 꿈꾸던 장소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허무함 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매번 나와 삐걱대기 일쑤니까. 내가 삼척을 벗어났다고 꿈꾸던 나로서의 삶이 시작되지 않았던 것처럼.
익숙하고 당연했던 장소를 떠나본 적 있는 이라면 누구든 짐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마무리되는 <레이디버드>는, 어쨌든 고투하기를 독려하는 듯하다. 꼭 크리스틴의 모습처럼은 아니더라도, 사랑이든 미움이든 지금 당신이 겪어내는 그 장소와 그곳의 사람들에게 열렬하기를. 결국 모두가 지나가고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언젠가는 그리움이든 공허함이든 어떤 감정이 당신을 휩쓸 것이다. 어차피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면 잔뜩 그리워할 수라도 있게.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 내가 가장 예민했던 때 내 주변을 메웠던 그곳에 이상한 마음 같은 것이 있다. 물론 ‘그리우니까 나 다시 돌아갈래!’는 결코 아니지만. 어쨌든 내 삶, 내 기억, 내 인연들이 여기저기에 새겨진 곳이니까. 내 소중했던 때와 장소가 거의 그 모습인 채로 머물러 있는 곳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어느 때엔 아주 미워했더래도 결국은 애틋한 무엇. 친구들과 이따금 올랐던 산과 등하교 때마다 지나쳤던 다리라든지. 조금만 걸으면 늘 있던 강과 바다. 5일마다 시내에 열렸던 시장. 이 길이 뻗으면 어디에 닿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내가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던 그 장소들. 까마득히 멀리 있지만 그럼에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번외로 <레이디 버드>의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은 정말 멋진 사람인 것 같다!
혜정.
2018.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