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상경했다. 친척 언니와 친척 오빠가 살던 집에서 얹혀살았다. 그리고 나는 적나라하게 알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일이 힘든데, 가족보다 먼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은 더 힘들다는 걸.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과 부대껴 산다는 게 힘들었다기보다 어떤 난처함이 섞여 있는 마음 같은 거였다. 나는 그 마음이 어려웠고 싫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 살지 않아도 되는 나와 함께 살았고, 우리 부모님은 그걸 고마워했다. 그렇게 스무 살 대학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엉겁결에, 라는 말과 참 어울리는 모양으로.
생소한 사람들과 만나 친구가 되(어야하)는 일은 고되었다. 먼저 무슨 말을 걸어야 할지도, 나에게 오는 말에 어떤 대답이 적절한지도,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는 어떤 대화에서나 삐그덕거렸다. 그만 쉬고 싶었다. 다시 삼척에 가서 가만히, 이미 아는 사람들과 이미 아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럴 때였다, 작은 엄마에게 전화가 온 건. 명절이 아니고서는 얼굴을 볼 일이 없는 작은엄마에게 전화라니. 솔직히는 받기 싫었다. 다소 먼 가족과는 아무래도 불편한 대화가 오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따금 명절에 나누게 되는 대화처럼. 그래도 전화는 받았다. 받지 않는 건 나중에 내가 전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여보세요. 응, 혜정아. 아, 네, 작은엄마,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시작된 대화에서 작은엄마는 서울에서의 삶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힘들지 않냐고, 괜찮냐고,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재미있냐고. 나는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나름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작은엄마는 친척과 함께 사는 거래도 아무래도 낯선 타지에서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 많을 거라는 말과 함께 뭐 필요한 게 없냐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때는 아직 완연한 봄이 되기 전이었고, 그래서 날씨가 아직 추웠는데, 작은엄마는 전기장판을 서울에 있는 집으로 보내겠다고 하셨다. 내 것과 친척 언니, 친척 오빠 것을 함께. 나는 작은엄마에게 괜찮다고 했다. 방바닥이 따뜻하다고, 이제 날씨도 곧 바뀔 것이고, 꼭 필요하지 않다고. 아직 어린 두 자식을 키우는 작은엄마의 처지나 그런 걸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적당히 거절하는 것. 주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는 대신 마음을 받겠다고 말하는 것. 덥석 물지 않는 게 예의라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작은엄마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했다.
보내 줄게. 아니에요, 작은엄마, 괜찮아요, 현이랑 은이한테 필요한 게 많을 거잖아요, 저한테 보내주시는 대신 현이랑 은이 맛있는 거 사주세요.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수차례 거절했을 때였다. 작은엄마가 말했다.
혜정아, 작은엄마 그렇게 형편이 어렵지 않아. 그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어. 그 정도는 돼, 작은엄마가. 그러니까 그렇게 배려 안 해줘도 돼.
아, 나는 실수했구나 싶었다. 배려랍시고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 비슷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처지라는 게 얽히고설킬수록 더욱이. 그걸 그제야 알게 된 나는 부끄러웠다. 왜 이다지도 마음을 모를까. 이미 핸드폰 너머의 공기가 바뀌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은데. 나는 작은 엄마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또 모르겠어서 하하하,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작은엄마가 그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느새 누그러진 공기의, 그런 목소리로. 받아줄 거지? 나는 또 어색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잘 쓰겠다고.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주는 것을 잘 받는 사람이어야겠다고. 처지나 형편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 그것을 말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껏 잘하고 있나, 하면 전혀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산뜻한 주고받음에 대해서.
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