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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다정이 Oct 16. 2020

청소



중학교 국어 시간에 사물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본능이라기보다는 교육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사회의 시선이 아닌 자기만의 시선으로 사물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예시로 바퀴벌레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바퀴벌레를 보면 더럽다고 생각한다. 만지기도 싫고 죽이기도 무서워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바퀴벌레를 무서워했을까? 왜 다른 동물이나 곤충, 벌레보다도 바퀴벌레를 더 싫어할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퀴벌레를 본 아이도 바퀴벌레를 무서워할까? 선생님은 잠깐 활동지에 답할 시간을 주셨다. 바퀴벌레를 새로운 방향으로 한번 생각해보자는 질문에 아이들은 답을 쓰느라 열심이었다.


8살 때쯤이었나 침대 밑에서 바퀴벌레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지금이야 바퀴벌레를 보면 얼어붙고 발바닥을 동동거리며 피해 다니지만 그때는 바퀴벌레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냥 커다란 갈색 벌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바퀴벌레를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손바닥에 바퀴벌레를 올려두었다. 바퀴벌레는 내 팔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때의 느낌이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뭔가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랄까. 약간 이상하기는 하지만 바퀴벌레가 귀엽게도 느껴졌었다. 나중에 이때의 그 벌레가 바퀴벌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 팔을 씻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 같은 바퀴벌레였달까.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이 바퀴벌레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바퀴벌레를 보고 도망가던 사람들을 만나고, 바퀴벌레는 더러운 곳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배운 다음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친구 한 명에게 발표를 시켰다. 친구는 일어나서 “우리는 바퀴벌레를 보면 더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퀴벌레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바퀴벌레를 보면 아, 청소해야 할 때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바퀴벌레까지 저렇게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새로웠다. 청소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존재로서의 바퀴벌레라니.


그리고 바로 어제 나는 이 경각심을 느끼게 되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그냥 먼지나 털자 하는 생각으로 화장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화장대 서랍을 열었는데, 화장대 안에 있는 투명한 수납함 안에 정말 작은 아기 바퀴벌레 같은 갈색 벌레가 수십 마리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전부 죽어있었다. 찐득거리는 오일 때문인지 수납함에 벌레들의 사체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정말 청소하지 않고는 못 베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이사 오고 나서 처음으로 화장대와 서랍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묵혀둔 화장품들과 반쯤 남은 크림들, 올리브영에서 받았던 샘플들을 모두 정리했다. 벌레 시체들은 모두 하수구로 내려보내고 수납함도 뽀독뽀독하게 씻었다.


오늘까지는 화장대의 상태가 아주 마음에 든다. 언제까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새로운 벌레가 등장할 때까지가 아닐까. 귀여운 존재였다가 더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이제는 청소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된 바퀴벌레. 나에게 바퀴벌레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까. 다음에 바퀴벌레를 만나면 고민해봐야겠다. 당분간은 만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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