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집에 왔을 때 나는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고 한다. 8살짜리 딸의 눈물이 떨어지는 곳에는 하얀 종이가 있었고, 하얀 종이에는 검은색 펜으로 피아노 건반이 그려져 있었다며 엄마는 기억을 더듬는다.
사건의 시작은 그로부터 한 달 전, 종례 시간이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나는 책상을 건반 삼아 손가락으로 가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내 자리는 맨 앞자리 선생님 바로 앞이었고,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선생님은 ‘그럴 바에 피아노 대회라도 나가지 그러니’ 하고 말했다. 낭창했던 나는 진짜로 피아노 대회를 신청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피아노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으니 선생님과 이야기해서 준비하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그것을 말하는 것을 까먹었고, 준비를 하지 않은 채 피아노 대회 하루 전날이 되었다.
막상 닥치니 걱정이 몰아쳐서 대회 전날 밤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내일 대회인데 어떡하냐며 언니에게 찡찡댔다. 어릴 적부터 교육열이 넘쳤던 언니는 대충하고 자라고 말하기보다는 악보를 펼쳤고, 악보를 보고 외우라고 했다. 그리고는 하얀색 에이포용지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 주었다. 밤 9시가 넘었으니까 피아노를 치면 시끄럽다고, 종이 건반 위에서 연습하라고 했다.
언니는 먼저 잠이 들었고, 나름 모범생이던 나는 졸음을 참아가면서 12시까지 책상에 앉아있었다. 눈물의 종이 건반 연주를 하면서. 그때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셨고, 아직도 일 년에 한 번씩 이때 이야기를 하신다. 그 졸리는 눈을 하고 종이 건반을 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하시면서.
그렇게 졸음을 참으며 연습한 덕분인지 피아노 대회에서는 상을 받았다, 라는 해피엔딩은 역시나 없었다. 다른 친구, 선배들의 연주에 나는 주눅이 들었고, 내 차례 때는 악보가 기억나지 않아서 연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 악보를 피아노 위에 얹어주셨는데도 연주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졸음을 참으며 연습을 해도 하룻밤 사이에 실력이 늘기는 무리였다.
대회를 마치고 교실에서 나오자 할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매일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시고 집에 데려가려고 기다리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차마 연주를 끝내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잘하고 왔냐고 물으시는 할아버지에게 ‘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에게는 졸음을 참으며 종이 건반을 연주할 때보다 이 순간이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거짓말이다.
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