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떠 본 작은 신발

뜨개 육아

by 하루



아이와 만날 준비를 하며 아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첫 아이였기에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 하나하나가 모두 낯설었다. 입덧도 심했고 밤에 잠도 설치고 낮엔 너무 졸려 아기처럼 낮잠을 잤다.

드라마를 보면 아이가 생기고 손바닥에 다 차지도 않는 작은 아기 신발을 사서 아기를 만날 설렘을 담아 놓곤 하더라. 나는 이왕이면 정성을 담아 태교에도 도움 되는 손뜨개로 신발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만드는 방법도 몰랐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며 한쪽을 뜨고, 또 한쪽을 똑같이 떠야 하는데 매번 크기가 달라 몇 번을 풀고 다시 떴다. 커다란 탱탱볼처럼 커진 배 위에 작은 신발을 대 보며 '이게 맞을까' 크기를 가늠했다.


태어나 당장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신발이라니.. 양말이 나으려나.. 좀 아이러니하지만 출산 전에 준비하는 아기 신발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걸 알아갔다.

아기에게 신기기 위한 현실적인 용도가 아닌 기억하고 다짐하는 모티브의 역할이라는 것을.


내게 아이가 있구나.

이제 나는 부모구나.

곧 아이와 만날 거야.

많이 사랑해 줘야지.



병원에서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얘기를 듣고, '아, 아이가 생겼구나.' 하며 동시에 부모의 마음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이가 태어나도 그렇다. 내 아이를 품에 안으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눈물은 나지만, 비행 후 시차가 생기듯이 현실감 없는 모성애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무척 당황스럽고 괴리감이 생겼었다. 아이는 태어났는데 내 몸은 만신창이고, 쉴 시간 없이 아이는 배 고프고, 싸고, 운다. 아이가 예쁘지만 그래도 잘 때가 제일 예쁜 것은 잠시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엄마 맞나. 나는 모성애가 없나.' 몸이 힘든 중에도 매일 반성의 시간은 찾아왔다.


나도 그때는 몰랐지만,

아기 신발은 아기에게 준다기보다는 '이제 나는 엄마다.'라는 걸 기억하기 위한,

나에게 주는 이름표 같은 것이었다.



아기신발.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