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딸이야?

뜨개 육아

by 하루


"도와주세요" 분만실 의료진에게 내가 울부짖으며 한 말이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영웅담과 같은 출산스토리들은 그때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지 미리 안다고 대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플랜에는 없었던 상황들이 펼쳐지고 고통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분만실에서 나는 혼자인 듯 외로웠다. 무통천국?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럼 아프지 않고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가?' 내심 안도했는데... 진통이 왔을 때는 그에 맞춰 힘을 줘야 한다며 무통주사는 더 이상 주지 않았다. 나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었고, 울며 호흡이 가빠지는 나에게 의료진은 "이러면 아기가 산소가 부족해서 힘들어져요. 숨 쉬세요. 숨!" 나는 숨을 쉬는 것도 아기를 위해 쉬어야 했다.





조리원 생활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회복이 더뎌 엉덩이를 붙이고 앉지 못하고 비스듬히 기댄 채로 밥을 먹으며 골병이 든다는 말을, 뼈 마디마디가 쑤신다는 말을 세포 하나하나까지 체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저 시간이 흐르는 데로 나아지는 것이었고,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의 중심은 아기가 되었다. 좀 쉬어보자 누우면 수유시간이라며 아기가 오고, 다가 올 육아를 대비한 이모님들의 족집게 과외가 빡빡한 스케줄로 이어졌다.



벌써 산후우울증일까.. 그냥 내 성격 때문인 걸까..

아기는 예쁨 받고 보호받는 게 당연한데 내 아기에게 질투하는 몹쓸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임신했을 때는 뱃속에 있는 아기를 생각해서 잘 먹고 조심해야 했고.. 아기가 태어나니 아기만 쏙 데려가 예뻐하고 나는 뒷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림자 같았다. 남은 건 구석구석 쑤시는 상한 몸뿐이었다.



내 몸이 힘들어서 아기를 돌보지 못하는 건데 아기를 뺏긴 것 같기도 하고.

내 아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힘든 시간도 지나는 게 아쉬웠던 건 다가올 아이와의 둘만의 시간이 더더욱 두려워서였다.





엄마가 계셔서 다행이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난 여전히 몸이 힘들었고, 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한동안 집에 오셔서 집안일이며 아이 돌보는 것까지 도와주셨다.

예상치 못한 건 엄마도 아이를 키워 본 지 수십 년이 지났다는 것. 엄마는 키웠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나는 머리로만 아는 생초보였다.


기저귀가.. 이걸 어디로 붙이는 거냐?
이렇게.. 하는 거 같은데...


애가 잘 먹으니까 좀 더 먹이면 되지— 더 달라고 울잖아.
정해진 양이 있다고. 두 시간 있다가 또 먹을 건데 뭐..



첫 손주가 예쁘기도 하시겠지만 결국은 딸 때문에 이렇게 고생이신 걸 아는데 밤낮없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고단한 상황은 말 못 하는 예민함과 서운함을 차곡차곡 쟁여갔다.



내게 자식이 생기니 엄마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을까.




엄마, 나는 어떤 딸이야?


착한 딸이지 —


ㅎㅎ 그냥 착하기만 한 딸?


착하고, 아련하지..

맨날 아파가지고..

...

손톱 자르면서 생각이 들더라.

딱 자르니까 아린 거야 —

손주가 뭐라고..




손주를 만지다가 스쳐 상처라도 날까 봐 평소보다 바짝 손톱을 자르셨다.

나는 이런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평소 나는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실을 쓰는데, 특별히 예쁘고 부드러운 실을 골라 '사는 게 낫겠다' 싶은 가격으로 인터넷 주문을 했다. 가깝고 애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선물은 어렵다. 엄마는 옷을 고를 때도 안목이 있고 취향이 확실하셔서 어떤 색, 어떤 디자인으로 만들어야 마음에 드실지.. 깊은 고민이었다.


이번엔 또 누구 주려고 그렇게 고개 아프게 뜨는 거야?
있어 — ...



얇은 실로 긴 목도리를 뜨려니 한참이 걸려 뜨는 모습을 종종 들켰다.

해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다. 감동도.. 그다지 모르겠다. 받아 보고 좋아하시긴 하셨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밝고 살가운 스타일은 아니셔서 감격스러운 리액션도 없었다.

실 선택과 디자인부터, 부피감과 보온성을 위해 무늬가 다른 두 겹 구성까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꽤나 신경 썼는데.. 엄마가 그 목도리를 두르시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마께 목돌이.jpg



그래도 내 마음은 전해 졌겠지..


엄마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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