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육아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민이다.
반찬은 무얼 해줄까. 국은 무얼 끓여줄까. 무얼 좀 맛있게 해 줄까.
변비가 심한데 응가를 잘하려면 무얼 먹여야 할까.
예쁜 옷을 좀 사줄까.
표범 옷을 아들이 좋아할까.
'무얼 해주면 좋을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뭐가 좋았더라..' 엄마가 내게 해주셨던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옛날 앨범 속 오래된 사진들 사이에 엄마가 떠 주신 스웨터를 입고 있는 내가 있다. 엄마가 뜨개질을 하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있으신지 알지도 못했다. 나는 그때 기억이 없지만 사진을 보고 '나도 엄마가 떠 주신 옷을 입었었구나..', '내 기억 속엔 없는 어린 시절에도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싶었다. 손뜨개도 유전자가 있는 것인가..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나도 아이들의 옷과 소품들을 만들어주고 있다. 받은 그 사랑도 뜨개 한 코, 한 코에 꼼꼼히 담겨서 아이들의 마음까지 따뜻이 보듬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릴 적, 집에 빵 굽는 기계가 있었다. 요즘 같은 오븐은 아니었고, 전기로 작동하는 커다란 냄비처럼 생겼었는데, 엄마와 가끔 카스텔라를 구웠었다. 계란을 깨고 흰자만 따로 모아 휘저어서 거품을 내는 건 나의 몫이었다. 팔이 아프다며 마무리는 엄마께 넘겼지만 나름 진지했고 즐거웠다. 빵틀에 베이킹용 페이퍼를 깔고 반죽을 붓고 타이머를 돌리면 집 안에 달큰 고소한 빵 냄새가 가득했다. 막 구워져 따끈따끈한 카스텔라는 겉이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고 정말(정말) 맛있었다. 시간을 못 맞춰 좀 더 구워진 날에도 오히려 겉이 더 바삭해서 좋았다. 지금은 그 정확한 맛보다는 엄마와 함께했던 그 시간이 카스텔라의 온기처럼 내게 따듯하게 남아있다.
오래 기억될 만한 감동이 있으면 그 순간이 그렇게 남는 걸까. 우리 아이들에겐 어떤 기억이 남을까.
무얼 해줘야, 무얼 함께 해야 좋을지 늘 고민이다.
"엄마가 일찍 데릴러 온데요!" 오랜만에 아들과 둘만의 데이트를 준비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가겠다고 한 말을 계속 기억하고 기대했나 보다.
아침에 얘기할 때는 "아빠가 오면 좋겠는데.. 맨— 날 아빠만! 오면 좋겠다!"라고 하며 서운하게 하더니.. 선생님께는 자랑을 했나 보다. 쳇.(큭)
동생에게 나뉘는 시간 때문에 뭘 해도 아쉽고 서운해하는 것 같아서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둘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신나게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좋아하는 커다란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듯 들떠 밝게 웃었다. 별거 아닌 거에도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따로 시간을 내길 참 잘했다 생각했다.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하던 아이를 위해 중식당을 찾았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식성이 그런 것인가.. 아들은 면에 짜장 소스를 뿌리지 않고 단무지와 함께 면만 먹었다. 아니.. 이럴 거면 왜 짜장면이 먹고 싶었던 거니... 나는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데 아들은 맛있다고 먹었다. 사실 아주 나중에 아이의 기억에 남는 건 짜장면의 맛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와 함께였고, 자신이 먹는 것을 바라봐주던 엄마의 눈빛이 따듯함으로 남는다면.. 나는 성공인 것 같다.
나의 추억 속에도 그런 시간이 있다.
유치원을 다닐 즈음이었을까.. 동네에 있던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빠가 돈까스를 사주셨었다. 아빠랑 나랑 둘만의 데이트였다. 돈까스도 아마 한 개만 시켰던 것 같은데, 그 시절 비싼 레스토랑에서 딸이 좋아하는 돈까스를 사주고는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던 아빠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이 생각난다. 아련하고.. 부모가 된 지금은 죄송하고, 감사하고.. 좀 쓸쓸한 마음도 들지만 참 좋았던, 무뚝뚝하고 무서웠던 아빠와의 따듯한 추억이다.
아들에게도 엄마와의 데이트가 그런 보드라운 추억으로 남겨지면 좋겠다.
힘든 어느 날, 외로운 어느 날, 무너질 것 같은 어느 날..
그렇게 함께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