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육아
작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과일 젤리를 먹는 방법이 너무 다른 두 아이를 보며 혼자 피식 웃자 아이들은 엄마가 왜 웃는지 영문을 몰라 벙찐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아들은 과일은 남겨두고 투명한 젤리만 츄릅츄릅 떠먹는다. 과일에 붙은 젤리까지 깨끗하게 발라먹고 아껴놓은 과일과 코코넛 젤리를 마지막에 먹는다.
딸은 처음부터 덩어리를 공략한다. 과일과 코코넛 젤리부터 하나씩 건져 먹고 투명한 젤리는 숟가락으로 잘게 부수어 퍽퍽퍽 휘적휘적 섞어 후루룩 마신다. 요즘말로 테토녀의 기질이 보인다.
방법은 달라도 맛있게 먹는 건 똑같다.
특별한 날에 모처럼 외식을 하려 해도 식성이 너무 다르니 여길 갈까, 저길 갈까 고민이 많다.
딸은 치즈를 좋아해 최애가 치즈돈가스이고 치즈핫도그와 치즈피자도 잘 먹는데, 아들은 그와 반대로 치즈 냄새만 맡아도 '우웩'이다. 하지만 '한식파'라 나물류도 잘 먹고, 아저씨처럼 곰탕에 밥 말아 한 그릇 뚝딱이다. 결국은 메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됐다, 그냥 푸드코트 가자" 하고 각자의 메뉴를 즐긴다.
'누구는 잘 먹는데' (누구는 잘하는데)와 같은 비교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먹기 싫어도 시간이 지나 식성이 바뀌면 먹을만해지기도 하니까. 실제로 좀 지나서 아들은 핫도그에 들어간 치즈는 먹는다던가, 딸은 오빠가 나물을 잘 먹는 걸 보며 한가닥씩은 뱉지 않고 먹어보는 의미 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제일 억울해"이다. 3자인 내가 보기엔 번갈아가며 적당한 핑퐁인데, 아이들은 자신의 희생만 보인다. 늘 자신이 더 양보했다고 생각한다.
나이 차이도 있고, 성별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데 간식의 개수가 같아야 하고 놀이시간도 같아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차이에 따른 진짜 평등을 가르치고 싶다.
나부터가 아이들의 다름 그대로 특별함을 보아주며 존중할 때 아이들도 받은 시선의 온도와 마음 그대로 세상을 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도 생존 본능이 있다. 마냥 웃고 놀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눈치도 보고, 부모가 힘든 것도 알고, 잘못한 것도 알고,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도 하고, 용기 내어 사과도 하고, 하루하루 애쓰며 커가고 있다.
그런 아이에게 비교와 꾸지람으로 더욱 경쟁하게 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충분히 잘하고 있고,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우리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얘기해 줘도 되지 않을까.
세상의 많은 불화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에서 오는 것 같다.
내 배에서 나온 두 아이도 이렇게나 다른데,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은 건 당연하지.
다름이 특별함으로 존중될 때 아이들의 마음은 안정되고
자신의 색을 찾아 단단한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