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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Feb 12. 2023

내 사주엔 흙이 없다.

사주팔자 같은 것은 믿지 않았었다. 사람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재미없겠어?


그러나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나도 슬슬 사주, 운명 따위에 눈이 갔다. 아마도 내 인생이 사주 따위 믿지 않겠다던 어렸을 때 상상하던 어른의 모습이 아니기에, 그렇게라도 무언가에 의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도저히 답이 없는 인생이라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던 것 같다. 선명한 정답 좀 달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철학관이라는 곳에를 갔었다. 혼자는 무서워 친구와 함께 갔었는데, 그때 사주 할아버지가 내게 해주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꽤나 잘 맞아서 신기했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때(서른 하나)부터 마흔여섯까지 다 계획이 있었다.


그 말들이 꽤 듣기 좋은 말들이라서 믿고 싶다. 할아버지 말대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마흔이 되기 전에 두 아이를 낳고 싶었고, 사십 대에 큰 부를 쌓고 싶었다.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불, 금, 흙, 물, 나무의 기운을 적절하게 배치받는다. 그리고 내 사주에 '금'은 많지만, '흙'은 아예 없고, '나무'도 부족하단다. 우주의 기운에 따르면 내 이름이 '그루'인 것도 부족한 나무의 기운을 채우는 것이고, 내 직업이 농부라 늘 흙과 함께 하는 것도 부족한 흙의 기운을 채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돌고 돌아 결국 농부다. 벗어나지를 못 한다.


얼마 전, 블로그를 정리하다 진도에 막 내려왔을 때 적었던 귀여운 포부를 보았다. 스물두 살 휴학했을 때부터 꾸준히 써온 블로그였다. 스물넷의 끝자락에 내려와 스물다섯에 사업자를 냈다. 그리고 8년 전 포스팅에는 다음과 같은 포부들이 적혀있었다.



8년 전 나의 꿈으로 고구마를 외쳤는데, 8년 후에는 고추를 얘기하고 있다. 고추 스마트팜, 고춧가루를 활용한 체험들, 고추놀이터. 결국 돌고 돌아 생각한 것이 겨우 농사다.


농사짓는 부모님의 곁으로 내려와 핫한 아이템으로 대박을 쳐 부모님을 은퇴시켜 주는 효자효녀들의 수많은 성공사례들을 보면서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흰머리와 주름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아빠와 얼마 전에는 손목수술까지 한 엄마를 보며 더더욱.


이 길이 맞는 것일까? 내려온 지 8년이 지났는데, 우리 집은 여전하지 않은가. 나는 대체 왜 내려왔었던 거지?


그렇게 고민을 했다, 시작의 이유를. 정답은 아니지만, 이게 진짜 내 진심인지 혹은 그냥 양심상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답은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왜 행복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바보 같을 정도로 붙잡고 있는 농사라는 끈이 정답이었는지, 오답이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내 사주에 없던 흙을 이렇게 채우는 것이 맞았던 것인지를 꾸준히 글로 남겨봐야겠다. 8년 전 블로그의 열정 가득한 누군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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