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왕가위 영화는 영상미, 특히 그 몽롱한 이미지가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아마 내가 몽롱하게 지냈던 시절에 몽환적으로 내게 다가와 나를 겁탈한 존재였기 때문인 것 같다.
'크리스토퍼 도일'이란 이름은 왕가위 영화의 촬영감독으로서 씨네 21을 통해 각인돼 있었고, 15년 전 덜덜거리던 고장 난 넷북이 영화를 버벅대며 플레이했을 때 그것마저 특유의 셔터스피드를 열어놓고 촬영한 기법인 줄 알고 프레임 하나하나가 마치 그림 같았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중국어를 보통화 위주로 익히기 시작한 뒤로 광둥어로 된 영화는 잘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토리가 밋밋한가?' 하고 느껴질 때쯤, 요리하듯 시간을 버무리며 마스터다운 연출로 내 감정을 밀어붙이듯 압도해 버리는 시퀀스에 이내, "보통화가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는 성찰까지 주었다. 그런데 보통화도 틈틈이 배치되어 있었다. 보통화와 광둥어의 차이가, 보통화와 한국어 차이쯤 되지 않을까 싶다.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드문드문 나오는 대사와 영상은 영화이면서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