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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Sep 08. 2019

좋아하는 일을 모를 때


나는 게으르다. 매일 쓰지 못하는 일기, 아직 풀어내지 못한 수많은 여행기, 정리하지 못한 채 외장하드에 용량을 차지한 몇 백 기가바이트의 사진들. 시간을 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고, 칼퇴를 하고 집에 와서 잠들기 전까지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지만 늘 저녁을 먹고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잠이 든다.


요즘은 책도 읽지 않는다. 예전처럼 책의 내용이 흡수된다는 느낌이 없다. 일종의 의무감처럼 읽는다. 차라리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나아질까 싶어 예전에 잘 읽었던 작가의 책을 고르고 골라 애써 찾아 읽어도 전처럼 재미가 없다. 반쯤 읽다가 멈춘 책들이 책장에, 전자책 앱에 쌓여간다.


사월에 직장생활에 큰 고비가 있었고, 지옥 같은 한 달, 혹은 몇 년을 버틴 후, 오월에 짧은 여행을 떠났다. 1일 1마사지가 기본이라는 그 천국 같은 곳에서도 회사로 돌아갈 일이 걱정되어 순간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는 게 원망스러워서 그 순간의 완벽함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돌아보면 ‘너무나도 행복’의 쨍한 노란색과 ‘하지만 결국 돌아가야 함’의 시컴한 검정이 섞여 이상한 똥색의 후회로 발라버린 여행이 되고 말았다.


어딘가 고장이 났다. 그런 것 같다. 어딘가 심각하게 망가졌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로는 그 환부를 다 덮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내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인 것처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단어를 주워섬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들 이런 마음을 잘 조절하면서 살고 있을까. 나처럼 그냥 어딘가 고장이 나긴 났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까. 다른 자극을 줘서 스스로를 산만하게 할까. 등의 어느 부분이 미치도록 가려운데 손이 닿지 않을 때, 몸을 꼬며 대신 손등을 긁는 것처럼.

 

그래,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그 좋아하는 것 중에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게 뭘까. 아, 수입을 창출하는 것 까지는 너무 부담이니 일단 좋아하는 거라도 찾아보자. 나는 뭘 좋아하지?


엄.... 여행? 아, 근데 요즘은 피곤해서 여행도 별로.

책 읽기, 글쓰기... 예전엔 음악도 많이 들었었는데.

요즘은 영화도 안 보고,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는 위시리스트만 차지하고 있고. 운동은 살려고 하는 거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거? 근데 그것도 시간 낭비인 것 같아 싫다. 이것도 싫지만 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지.


남들에게 보일만큼 대단한 재능도 없고, 너무너무 재미가 있어서 계속 죽도록 하고 싶은 열정의 대상도 없다. 이거 이상한 거 아닌가? 단순히 회사 일이 지긋지긋해서 번아웃이 온 것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인생을 자체를 좀 잘못 산 것 같은데?


동거인도 회사에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일이 좋아서 쉴 때도 일이랑 관련된 책을 읽고 가끔은 혼자 방에 틀어박혀 밤늦도록 일을 하기도 한다. 다른 친구는 갑자기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이빙에 빠져서 자격증을 하나 둘 따더니 지금 몰디브에서 강사로 일한다. 삶이 팍팍한 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 미소가 참 밝다.


그럼 좋아하는 건 넘기고, 싫어하지 않는 걸 찾아보자. 흠, 싫어하지 않는 건 세상에 쌀알만큼 많을 수 있으니까 죽도록 싫은 걸 찾아서 그것만 빼볼까. 이건 쉬울 거야.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건 뭘까?


회사? 지금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인 하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삶을 지탱해 주는 곳인데. 안정적이지 않은 삶은 싫은데, 그렇다고 이렇게 목적 없이 사는 기분도 싫고. 돈이 없는 건 싫지만 돈의 노예로 사는 것도 싫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 오래인데 이제 와서 회사 때려치우고 부모님한테 용돈 타쓸 수도 없지만 그러기도 싫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정말 딱 죽을 만큼 싫다. 그냥 이렇게 회사원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가는 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싫고. 삼십 대에도 중2병 걸린 사람 마냥 이러고 쭝얼거리고 있는 것도 싫어. 아, 몰라 그냥 다 싫다. 내가 싫다.


내가 싫다. 근데 나를 빼면 세상에 남는 게 없잖아. 적어도 나한테는 나를 빼면 남는 게 없는데. 왜 나는 이런저런 선택 속에서 스스로를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고는 스스로를 싫어하게 되었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십 대에는 돈도 없고 문제는 많고 주위에 아무도 없이 타향에서 혼자였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좋아했는데. 적어도 나의 욕구에 맞춰서 살 줄 알았는데. 안정적인 직장이냐, 아니면 그 직장을 얻으면 죽을 것 같은 나냐 - 그 사이에서 나는 그래도 고통에 찬 나를 스스로 구해줄 용기가 있었는데. 배 좀 고프면 어때. 갖고 싶은 것 좀 덜 가지면 어때. 하고 싶은 것 좀 못하면 어때. 좋아하는 게 좀 없으면 어때. 적어도 나는 나를 좋아하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야.


지금은 먹고 싶은 거 잘 먹고, 작은 집에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물건이 가득 차 있지만, 나를 도와주고 싶다는 좋은 친구들도 있지만 - 나는 나를 싫어한다. 나는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엄청난 능력이 없는 나를, 미치게 좋아하는 게 없는 나를, 회사에 다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몽땅 그 불쏘시개로 쓰는 나를, 그 결과로 받은 돈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불평하는 나를.


창 밖으로 커다란 태풍이 오고 있다. 내 마음에도 엄청난 태풍이 인다. 문제는 대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르면 알면 된다. 찬찬히 시간을 들여 알아가면 된다. 알지 못하면 차근차근 찾아보면 된다. 찾지 못하면 하나 만들어 내면 된다. 그래도 안되면 그냥 없이 살아도 된다. 사람이 꼭 미치게 좋아하는 게 있어야만 인생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산다.


좋아하는 건 없어도 살지만, 나를 좋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나를 몰래 미워하면서 지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왜 팔을 최대한 뒤로 뽑아 등을 긁지 않고 손등만 피가 나게 긁었을까. 정 안되면 벽에라도 비비든가 옆에 누구한테라도 좀 긁어달라고 하지. 왜 계속 애꿎은 손등만. 그리고는 손이 등에 닿지 않는 나를 탓하고, 하필이면 그런데가 가려운 나를 미워하고 - 왜 그랬을까.


다음 질문: 이제 어떻게 해야 나를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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