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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Jan 31. 2018

Dear Diary

나의 소중한 하루에게


1월 _ 춥거나 더러운 겨울



작년에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얻었고, 올해는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일기를 쓰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마다 옆에 두고 쓰곤 하는데 생각보다 여러 가지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꼭 '아, 이걸 일기에 써야지'하고 생각을 더 끌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손으로 쓰다 보면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조금 더 나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끄적이기 시작하다가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종국에는 자기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어느 날 어떤 여행 작가의 홀로 떠난 세계여행 책을 읽고 있었다. 아끼고 아끼는, 그래서 더 멀리 가는 여행 이야기였다. 밥은 군것질로 때우고, 싼 숙소를 찾아 온 동네를 뒤지는 그런 여행. 나도 나름 아낀다고 때로 궁상맞게 다닐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 존경심이 퐁퐁 솟아났다. 왠지 심장이 벌렁벌렁 해서 책을 읽다 말고 일기를 펼쳐 들었다.


나는 왜 젊을 때 나를 모두 던지는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가진 모든 걸 다 털어 넣고 또 아끼고 아껴서, 멀리멀리 떠나는 그런 여행을. 그러기엔 그때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았을 수도, 혹은 너무 없었을 수도 있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 작가가 한 것 같은 여행은 할 수 없겠지.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잠도 깨끗한 호텔에서만 자고 커다란 배낭을 메는 일도 없는 걸.


하지만 백팩커스 도미토리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고, 국경을 넘는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도착한 도시를 둘러보는 여행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다 귀찮을 땐 그냥 혼자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델 가서 얼마든 한참 시간을 보낸다. 왜 더 이상 그런 여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여행 책을 덮고 일기를 끄적이다 퍼뜩 깨달았다.

지난 6년 동안 7번 여행을 떠났고,

단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동안 백팩커스 대신 호텔을 선택한 것, 두 다리 달린 커다란 배낭 대신 튼튼한 바퀴가 달린 캐리어를 선택한 것이 백 퍼센트 나의 뜻은 아니었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과 조율 끝에 그 여행에 맞는 방향을 찾아간 것뿐이다. 그래서 좋았던 점도 물론 많다. 같이 다니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호텔에 묵을 수 있었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고생할 필요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같이 여행한 친구들과 평생 이야기할 추억이 생겼다.


하지만 함께 떠나는 여행만큼이나 혼자 떠나는 여행도 중요하다. 완전한 휴식을 위해서 때론 혼자 떠날 필요가 있다. 함께 떠날 사람을 찾아 스케줄을 맞추거나 그네의 여행 스타일을 고려할 필요 없이, 가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떠나는 거다. 가보지 않은 곳에서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 혹은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만나 내 안에 있는 줄 몰랐던 나를 끌어내 보는 것. 분위기에 휩쓸려 가보지 않던 길로 흘러들어가 보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기분과 느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보는 것.


6년간 7번 여행을 떠난 후에야 다시 혼자 하는 여행으로 돌아왔다. 놔두면 알아서 굴러가는 캐리어를 대신 창고에 박아놓은 여행 배낭에 옷가지 몇 개를 대충 넣고 떠날 수 있다. 다시 이층 침대가 옹기종기 모인 도미토리 방에 묵을 수 있다. 공용 샤워실에서 순서를 기다려 샤워를 하고, 공용 주방에서 맥주를 홀짝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맘에 맞는 친구를 만나 며칠 정도 같이 돌아다니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줄 수도 있겠지.


다시 오롯이 혼자 떠날 수 있다.

혼자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막상 혼자 떠날 걸 생각하니 온몸에 긴장감이 감돈다.



다음날 페이스북은 친절하게 6년 전 내가 쓴 글을 선물로 남겨주었다.



imageⓒ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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