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째 주 캥거루 이야기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뻥을 칠 기회를 놓치기 전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 한국에 왔어!"
흥분해서 외쳤지만, 친구는 코웃음을 치며 국제전화를 걸어놓고 한국이라고 뻥친다며 구박했다. 떠나기 전과 똑같이 밝고 활달한 목소리가 반가워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전화기 저 끝에서 친구는 새댁이 되어 남편의 등을 긁어주며 지루하고도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시드니 도심 한가운데 있는 어느 아파트 10층에서 시드니타워를 올려다보며 홀로 서 있었다.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도, 서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호주에서는 4월 첫째 주 일요일에 일광절약제가 끝난다. 뉴질랜드에서도 경험해 봤지만, 그래도 늘 헷갈린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완전 헷갈린다). 자기 전에 시계를 한 시간 당겨놓고 자라는 얘기를 다시 들었다. 사람이 시간을 마음대로 당겼다 밀었다 하는 게 말이 돼? 몇 번을 겪어봐도 장난 같이 느껴진다. 지구 상의 모든 인구가 동시에 점프를 해도 지구는 쪼개지지 않고, 모든 호주 사람들이 다 같이 한 마음을 먹고 "내일부터는 8시가 7시야!"라고 하면 시간을 당기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비록 하루뿐이기는 하지만 시간의 간극에서 뿅 하고 생겨난 1시간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오늘의 그 기쁨은 일광절약제가 다시 시작하는 10월쯤엔 쓰라림으로 바뀌겠지만, 그건 또 한참 후의 일이다. 어제랑 똑같이 8시에 일어났지만 일광절약제가 끝난 오늘은 8시를 7시로 쳐주니까, 똑같이 자고도 1시간 일찍 일어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거나, 아니면 침대 안에서 1시간 더 꾸물럭 거릴 수 있다. 이히히.
평소보다 여유롭게 일어나서 일하러 가는 길. 걸어가는 길목마다 마주치는 시계를 보며 궁금증이 일었다. 누군가는 새벽에 나와서 시드니의 모든 시계를 한 시간씩 돌려놔야 하는 걸까. 그런 아르바이트가 있다면 지원해보고 싶었다.
한밤 중에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이 모여서 지역별로 할당된 시계의 위치를 받고, 해가 뜨기 전에 후다닥 시계를 바꾸러 온 도시를 뛰어다니는 일.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마법처럼 간극의 1시간만 선물처럼 남기고 사라지는 거다. 모든 도시 사람들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니,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30분쯤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이제 가을이구나 싶을 정도로 하늘이 파랗고 하얀 구름이 몽글몽글한 날이라 밖에 나온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났더니 일주일이 휙 지나가버렸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은 사진을 찍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일기조차 쓰기 힘들었다. 한 달 만에 이렇게 바빠질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지난달에는 일을 구하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일 때문에 바쁘다니.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시드니의 4월을 제대로 즐기려면 더 많은 간극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가 시간을 좀 선물해 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