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델리 Nov 26. 2020

할 일이 없어서, 정리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전생에 고대 이집트인이었다.


적어도 한 번은. 어쩌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건 내가 중학생 때 소설 「람세스」에 깊이 빠졌기 때문도, 내 첫 배낭여행지가 이집트였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전생에 고대 이집트인이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틈만 나면 물건을 정리하는 괴벽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가장 보수적으로는 이사라던가, 또는 새로운 물건을 들일 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리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누군가와 헤어져서 머리를 자르는 대신 그와 함께했던 공간을 다듬을 수도 있고, 가끔은 그냥 지긋지긋해진 낡은 공간에 새로움을 불어넣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나의 정리는 위의 어떤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리의 때가 오면 온 집안을 뒤집어엎어서 정리를 한다. 왜 하는지도, 무얼 위해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며칠이고 공을 들여서 한다.


이번에 시작한 정리도 또한 마땅한 카테고리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찾아왔다. 올해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살면서 이미 수없이 여러 번 정리를 거듭했기 때문에 모든 물건은 종류별로 알맞은 박스에 담겨 있다. 침대 밑에 넣어둔 박스들을 꺼내자 오래된 편지며 10년도 넘게 모아 온 다이어리,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가 튀어나왔다. 저번 정리 시즌에 버리지 못한 것들이다. 이번 시즌에는 꼬박 일주일 동안 정리를 했다. 백수라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점점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세월아 네월아.


먼저 아주 오래된 편지부터 손을 댔다. 편지가 수북이 쌓인 검은색 이케아 종이박스를 뒤집어엎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주고받은 꼬깃꼬깃 접힌 쪽지부터, 고등학생 시절 펜팔을 하던 친구가 보낸 온갖 장식이 블링블링한 편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에게서 받은 편지, 생일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청첩장과 워킹홀리데이 때 만났던 친구들이 외국에서 보낸 편지까지 각양각색이다.


아무래도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에게서 받은 걸 가장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싸그리 다 버리지는 못하고, 거기서 또 고르고 골라 몇 통을 또 남겼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확 버리려다가 아무래도 아까워서 정리만 해뒀다. 언젠가는 다 버릴 수 있는 날이 오겠거니. 그래도 다시 정리한 박스가 가벼워져서, 올해 퇴사하면서 받은 편지와 롤링페이퍼(아직도 이런 걸 준다. 근데 또 묘한 감동이 있다.)도 같이 껴서 넣어두었다.


다음 박스를 엎자. 중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다이어리와 온갖 잡동사니가 나왔다. 기억에 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 걸스카우트 어깨띠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받은 개근상과 으뜸상 메달도 똘똘 말려 있었다. 그뿐인가. 라섹 수술을 받기 전에 쓰던 오래된 안경도 나오고(이건 눈이 얼마나 나빴는지 자랑하기 위해 남겨두기로 함) 이제는 안 쓰게 된 옛날 종이통장도 한 무더기가 나왔다. 다이어리와 안경만 빼고 나머지는 사진을 찍고 버리기로 했다.


오래된 통장을 들춰보니 옛날에 얼마나 열심히 살았었는지 보여서 대견함이 나자레의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체크카드만 쓰던 시절이라 쓴 내역이 모두 통장에 찍혔는데, 그 한줄한줄에 이건 옷이었고 교통카드 충전이었고 동생과의 점심이었고 또 엄마와의 영화 관람이었다고 깨알같이 적어놨다. 이어서 알바 월급이 있었고 드디어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았으며 아껴 쓰던 생활비와 매달 꼬박꼬박 부은 적금도 있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며 통장을 잘게 잘라 버렸다. 이런 것이야 말로 스스로 정리하고 싶은 것들이다. 얼마나 소중한 기억인지 나만 아니까. 그 시절의 나는 내 안에 오롯이 있고 어디 가지 않았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그때의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그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오래도록 버리지 못한 그 증거들을 보낼 수 있다. 과거의 추억에만 묻혀 살 수 없으니까. 길든 짧든 앞으로 살 날들에 충분한 공간을 주고 싶어서, 강박적으로 모아 집착적으로 쌓은 과거를 소중히 들어 손수 소각장으로 보낸다.


결국은 박스의 크기를 줄여가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박스가 줄어들다가 언젠가는 아예 없어질 수 있도록. 내 인생이 끝날 무렵에 정리할 것이 한 짐이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찌지구리한 모든 걸 그냥 남기고 가고 싶지도 않다. 오직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물건들을 내가 스스로 정리하면서 집착을 끊어내기 위해 이렇게 주기적으로 정리를 한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그동안엔 미처 몰랐지만 나에게 정리는 하나의 중요한 의식(Ritual)이었던 셈이다. 살면서도 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고대 이집트인의 삶을 살고 있다.


이제야 알맞은 카테고리가 생겼다.

고대 이집트인 체험용 정리.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백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