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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Jan 20. 2021

고양이 구출 작전

강추위로 고생한 1월의 어느 날


어디서 고양이 우는 소리 안 나?


동거인이 말했다. 막 저녁을 먹고 치운 참이었다. 설거지 거리를 주방에 갖다 놓고 동파 방지를 차원에서 싱크대에 물을 살짝 틀어놨다. 아직 온기가 남은 밥그릇 위로 차가운 물이 똑똑 떨어졌다.


고양이 소리? 난 모르겠는데.


고양이 소리가 난다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워봤지만 딱히 울음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동거인은 계속 밖에서 고양이가 구슬프게 운다면서 거실 창문을 열어젖혔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한참 밖을 내다보더니,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나가 봐야겠단다.


이 밤에, 추운데 어딜 나가.

계속 소리가 난단 말이야. 계속 울고 있어, 어디선가.


별일 아니기만 해 봐라. 속으로 꿀밤을 준비하며 잠옷 위에 패딩을 걸치고 같이 건물 밖으로 나갔다. 한파로 집에만 처박혀 있느라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도 버릴 겸. 겸사겸사. 밖에 나와보니 동거인의 말처럼 어디선가 날이 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고양이가 없었다. 골목길 이쪽에도 저쪽에도, 길가에 세워진 차 밑에도, 누구네 담장 위에도.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오는 동안에도 울음소리는 쉼 없이 이어졌다. 근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소리의 근원인 고양이는 투명망토라도 썼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유치원생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던 가족도 잠시 고양이를 찾아 서성거리다 추운 날씨를 못 이기고 이내 골목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추워 죽겠는데 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바람이 불면 펄럭거리는 잠옷 바지 안으로 얼음물 같이 차가운 바람이 쉥쉥 지나갔다. 그냥 가버릴까 싶다가도 거친 울음소리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하도 울어서 목이 쉰 것마냥 걸걸한 울음소리.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라도 알면 도와줄 방법을 고민해 볼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소리의 근원지가 이 골목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위에서 아래로 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옹. 아옹. 아아아아옹. 열린 창문 틈으로 누구네 집 고양이가 이렇게 논스톱으로 우나. 혹시 열린 창문은 없는지 하나하나 짚어 보며 시선이 올라갔다.


앗, 저기 있다. 옥상에 있네.


동거인이 우리 집 건물 옥상에서 얼굴만 내밀고 울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응? 어디? 나는 안 보이는데.


저기 있잖아. 저 하얀 에어컨 호스 옆으로 동그란 얼굴 내밀고 있는데. 치즈냥이야. 아직 어려 보이는데.


하얀 에어컨 호스는 보였다. 옥상도 보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어둠뿐이었다.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고양이는 흔적도 없었다. 나는 라섹 수술을 받은 지 7년 정도 되었고, 동거인은 라식 수술을 한지 반년도 안되었다. 그래서 그런 거겠지. 벌써 노안은 아닐 거야... 이유모를 서러움이 밀려왔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울음의 근원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 연유는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건물 옥상에 (아마도 갇혀) 있었다. 날씨가 엄청 추운데, 구해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우리는 4층 주인집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어쩌면 이런 게 바로 집사로 간택되는 순간일까. 몇 년 후에 옥상이(라고 멋대로 지어봄)가 우리 집에 온 날은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로 시작하는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몰라. 집주인 분이 나오시길 기다리며 둘 다 내심 설렜다.


주인집에서는 막 저녁을 드시려던 참이었나 보다. 뜬금없이 옥상에 고양이가 있다며 찾아와 평온한 저녁을 망쳐 죄송합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죽기라도 한다면 적어도 몇 달은 누구도 평온할 수 없을 거예요. 주인집 아주머니를 따라 단숨에 5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겨울이라 방치된 옥상은 무척 썰렁했다. 한쪽에 스러져가는 평상이 있었는데 그 아래서 예의 그 걸걸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옹. 아옹. 아아아아아옹. 얼마나 울었는데 이제야 왔냐고 타박하는 것 같았다.


어머, 어떻게 해. 아니 갑자기 어디서 왔지? 아우, 어떡해, 쟤를 어떻게 꺼내지. 그냥 키워야 되나.


주인집 아주머니는 겁이 많으셨다. 고양이를 꺼내는 대신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시는 듯했다. 빠른 포기일까, 아니면 역시 집사 간택을 오랫동안 남모르게 바라오셨던 걸까. 나는 냥냥 거리며 고양이에게 이리 나오라고 말을 걸어 보았다. 역시 듣지 않았다. 아마도 고양이의 귀엔 시답잖게 들렸겠지. 청경채. 청경채. 청경채애. 옥상에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공간도 꽤 널찍하고, 괴롭히는 다른 고양이도 없을 거고. 혼자라 좀 외롭긴 하겠지만...이라고 빠른 포기로 마음을 돌릴 즈음, 고무장갑을 낀 주인집 아저씨가 올라오셨다. 자... 잡으시려고요?


하지만 예상대로 고양이는 무척 날쌨다. 아저씨가 가까이 다가가자 총알같이 평상 아래에서 튀어나오더니 반대편 옥상 난간으로 단숨에 튀어 올라갔다. 아, 안돼!! 거긴 위험해 아가야!! 자기도 올라선 난간의 높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꼈는지, 슬쩍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눈 앞에서 고양이가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침. 착. 해. 침. 착. 해.


무, 문을 열어서 계단 타고 내려가라고 하죠...


동거인의 말에 주인집 아저씨가 샤샤샥 게걸음으로 옥상 문을 열어두고 다시 천천히 문에서 멀어지셨다. 고양이도 우리 맘을 읽었는지 난간에서 톡 바닥으로 내려와 문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휴우, 일단 옥상에서 구해내긴 했군. 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도 않았다. 겨우 한 층 반 내려갔을 뿐이었다. 고양이는 3층과 4층 사이 층계참에 있는 수많은 화분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빗자루로 살짝살짝 찔러봤지만 추운 곳에서 벗어나 안심이 되었는지 푹 퍼진 잴리처럼 바닥에 눌어붙었다. 한참을 옆에서, 또 아래에서(층계참 사이에 빈 공간이 있어 아래층에서 토실한 치즈 엉덩이가 보였다) 찔러댔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주 평온하게 창문 밖의 경치를 구경하며 누워있었다. 이러다 정말 저녁도 못 먹겠다 싶으셨는지 주인집 아저씨가 다시 고무장갑을 단단히 끼고 나서셨다.


내가 도도도 달려 내려가서 1층 입구 문을 열어놓고 다시 올라온 사이, 고양이는 얌전히 아저씨 손에 잡혔다. 의외로 순순하게. 원래 집고양이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히 잡혀서 4층에서 3층 우리 집 앞을 지나가다가 아저씨의 고무장갑을(그리고 아마도 아저씨의 손도) 찢어먹고 층계참으로 점프했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어. 주인집 아저씨의 처참히 찢어진 고무장갑을 보며 쓴웃음이 났다. 고생하신 주인집 내외분께 고양이는 저희가 내려보낼 테니 이만 들어가시라고 인사드렸다. 저녁도 못 드시고 뜬금없이 고양이 구출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 사이 고양이는 2층과 3층 사이 층계참 틈새로 고공낙하를 하려고 했나 본데. 그만 틈새에 낑기고 말았다. 얼굴이랑 앞발은 2층에, 뒷발과 엉덩이, 꼬리는 3층에 두고는 엉덩이를 씰룩씰룩, 노랗고 하얀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그 어마어마하게 귀여운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엉덩이라도 밀어주려던 찰나에 쑥 빠지더니, 2층에서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빈 화분 몇 개를 뒤엎고 1층으로 내려갔다(고 동거인이 말해주었다).


우리는 고생한 고양이를 위해 밥을 하나 뜯어서 집 앞에 두었다. 날도 추운데 고생 많이 했어. 밥이라도 먹고 가.






그날 밤 자려고 누워서, 우리는 그 고양이가 대체 어디서 왔을까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옆집 옥상에서 왔는데 못 나간 게 아닐까.

그럼 그 집 옥상엔 어떻게 올라갔을까?

아니면 옆 건물에 사는 누가 고양이를 우리 건물 옥상에 던져 버린 건 아닐까.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옆 건물에 산다고? 으엑.

어쨌거나 내려와서 다행이야.

응, 거기 계속 있었으면 아마 죽었겠지.

난 우리가 집사 간택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러게. 밥이라도 먹고 갔나...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어.

뭔데?

라식 수술이... 아주 잘 되었어.


응, 그래. 내 눈엔 정말 안 보였으니까(눈물). 적절한 라식 수술이 소중한 생명을 구했네요.


집사 간택에는 실패했지만. 아직 때가 아닌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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