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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Jan 13. 2021

어제의 백수

눈이 펑펑 내린 1월의 어느 날


어제 기다리던 눈이 펑펑 내렸다.

눈오리 집게를 사놓고 오매불망 눈이 오길 기다렸는데.

드디어!! 눈이 펑펑 내린다!


눈오리 집게 출동이요!


저녁으로 먹을 떡볶이를 사러 가면서

눈오리를 하나씩 만들어 봤다.

눈이 조금 들어가면 머리가 찌그러진 오리가 나오고

너무 많이 들어가면 울트라맨 같은 뚱진 오리가 나온다.

어쨌거나 귀여운 건 매한가지다.


좀 부족해도 뚱져도 귀여운 오리오리.


동거인의 열아홉 살 동생이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데

눈이 계속 쌓이니까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야, 너두? 야, 나두!)


떡볶이를 먹으며 무얼 만들까 의견을 나눴다.

동거인과 나는 이미 SNS에서

휘황찬란한 눈사람 사진을 너무 많이 봐버린 터였다.


그래! 우리도 할 수 있어. 판단력이 흐려진 우리는

호기롭게 가오나시 눈사람으로 목표를 정했다.


가오나시를 만들고 싶었는데 달걀귀신이 되었네.


여기저기서 눈을 퍼 날라서 열심히 쌓았는데

눈이 잘 뭉쳐지지 않네.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바가지라도 갖고 왔었어야 되나.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흑흑...)


아, 가오나시는 안 되겠구나.

탈룰라급 태세 전환으로 펭귄에 도전했다.

근데 펭귄으로도 모양이 잘 안 잡혔다. (엉엉...)

다시 한번 태세 전환. 그래, 오리로 가자.


어찌어찌 달걀귀신을 잘 깎아서 몸통을 만들고

머리는 눈 밭에 데굴데굴 굴려서 만들기로 했다.

머리 만들라고 했더니 한참 딴 데 가서

눈오리만 잔뜩 만들고 돌아온 동거인이 말했다.

화요일에 나와서 눈사람 만드는 건 우리뿐인가 봐.


우린 금손은 아닌가봐... 흑흑...


오리의 머리를 얹고 요리조리 조각을 했지만

이건 오리도 아니고 돼지도 아니고.

우리도 금손은 아닌가비...


금손이든 똥손이든

어제 눈오리를 잔뜩 만들고 재밌게 놀았다.

백수일 때 신나게 놀아야

앞으로도 눈을 싫어하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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