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봄인가 봐 싶은 3월의 어느 날
나와 동거인이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온지 꼭 1년이 되었다. 백수가 되고 가장 잘한 일이 바로 이사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그전에 살던 집 바로 뒤에 있어서 화장실에 손바닥만 하게 난 창을 통해 그 집 창문이 보인다. 지금까지 10번은 족히 돌려봤을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 조이 방 창문과 마주 보는 옆집 창문으로 옆집 남자가 아침마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그 집 분들께 모닝 세레나데를 불러줄 수 있다. 우리 집 화장실에서 그분들의 주방으로.
지금은 우리 집이 아닌 화장실 건너의 집에서 우리는 3년 하고도 6개월을 살았다. 거실 겸 침실로 쓰던 큰 방 하나, 옷방 및 동거인의 작업실로 쓰던 작은 방 하나. 큰 방과 작은 방 사이를 이어주는 기다란 공간의 한쪽에 현관과 화장실이, 맞은편에 다용도실 겸 주방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세탁기와 냉장고가 나란히 있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 13평 정도 되었나 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에, 한층의 공간을 둘로 나눈 터라 구조는 약간 요상했지만, 우리는 다른 집은 보지도 않고 그 집을 계약했다. 동거인과 같이 살기로 하고 함께 본 첫 번째 집이었다. 막 리모델링을 끝내서 벽지도 깨끗하고 바닥도 광이 났다. 창문은 튼튼한 이중 샷시였고 모든 문은 하얀색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완전히 새 것이었다. 우리는 하얗고 말간 그 집에 마음을 뺏겨 홀린 듯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동안 직접 짐을 퍼 날랐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아프게 알게 되었다. 그전에 동거인이 살던 집은 엘리베이터 있는 5층이었는데도 이사하는데 애를 먹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은 적어도 3배는 더 힘들었다. 게다가 동거인 짐의 절반 정도는 책이었다. 노끈으로 묶은 책 무더기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새 집으로 안 올리고 그대로 폐품으로 내놓고 싶을 정도였다. 손가락이 부러져라 책을 들고 3층 계단을 수십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음에는 꼭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가자고 이를 갈았다. 그런데 이번 집도 급하게 계약하고 나서 보니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이다.
이번에는 큰 짐이 많아서 ‘짐싸’라는 어플을 이용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리는 미처 몰랐지만 원래 사다리차는 이사 나가는 집에서 짐을 내릴 때 한 번, 이사 들어가는 집으로 짐을 올릴 때 한 번, 그렇게 2번 돈을 받는다고 했다. 두 집 사이의 거리가 1미터 정도로 가까워도 예외가 없단다. 예전 집 창문과 새로 이사한 짐 창문이 나란히 붙어 있어서 짐을 내린 뒤 사다리차는 바퀴 한 번 굴릴 정도만 움직여서 다시 짐을 올리면 되는데, 왜 그런 거죠.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의 고통을 알기에 무조건 사다리차를 불렀다.
이사할 때 코로나 때문에 조금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정말 운이 좋았다. 지금 이런 집으로 이사하려면 못해도 몇 천은 더 줘야 했을 거다. 아니면 월세를 내야 했거나. 그렇게 사다리차의 도움을 받아 이사한 지금의 전세 집은 20평 정도 되는데 여자 둘이 살기 딱 좋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써야 했지만, 지금 집에서는 모든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큰 방이 침실이고 중간 방이 작업실이고 작은 방이 옷방이다. 주방과 거실도 따로 있어서 공간이 분리된다. 모든 면에서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삶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약간 어긋나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는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서로에게 너그러운 마음은 넉넉한 공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거인은 원래 독실한 솔로였다. 누구랑도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늘 말해왔다. 나이를 적당히 먹은 나는 집에서 독립하고 싶었지만 혼자 살긴 너무 무서웠다. (아주 오랫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의 광팬이었던 나는 어마어마한 겁쟁이였다... 아, 아직도 겁쟁이다.) 우연히 한 모임에서 만나 친해진 후 나는 가끔 누군가와 같이 사는 건 어떤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적인 웃음을 곁들인 싸늘한 거절뿐이었다. 전 혼자 살아야 돼요. 남이랑은 못 살아요. 어느 날엔가 동거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며 나를 설레게 하더니 원룸을 나란히 얻어 바로 옆집에 사는 건 괜찮겠다고 했다. 대체 그게 어떤 의미에서 동거인가요...
어쨌거나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동거인의 마음을 녹이려 노력했다. 물론 옆집에 사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긴 했지만, 경제적인 부분이나 심리적 안정에 대한 부분을 고려할 때 옆집 아이디어는 썩 내키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멀리 인천에 혼자 살던 동거인을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오게 꼬셔서 우리 동네를 편안하게 느끼게 했고(이사 오라고 보증금도 꿔줬다), 가까이 이사 온 후로 뺀질나게 드나들면서 우렁각시처럼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쓰레기도 버려주면서 동거인으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2년 정도가 지난 후, 내가 노린 대로 동거인은 우리 동네의 매력에 푹 빠져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동시에 나와 같이 살면 꽤 얻을 게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겉은 멀쩡하고 깔끔한 사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집은 그렇지 못했던 동거인은 나와 함께 살면 집이 관리가 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동안 동거인은 빨래 더미에서 옷을 건져 입고 입을 옷이 떨어지면 다시 빨래를 해서 빨래 더미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계절이 바뀐다고 이불도 따라 바뀌는 일은 없었고, 일 년 내내 똑같은 이불을 덮으면서 겨울에는 보일러를 세게 틀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면서 살았다(가끔 보일러와 에어컨을 맘껏 틀 수 있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뭘 먹든 남은 음식은(심지어 편의점 도시락까지도) 무조건 냉장고에 넣는 게 습관이었다. 다시 꺼내 먹는 일은 0에 수렴해서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되었고, 이내 형태를 모를 버섯의 모습으로 냉장고 문을 연 나를 맞이했다. 나는 냉장고 청소를 할 때마다 제발 음식이 음식일 때 버려달라고 호소했다. 별로 소용은 없었지만.
동거인을 집 근처에 이사시켜 놓고 2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한 결과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긴 글이 될 것 같아 안 쓰려고 했지만, 안 쓰자니 약간 억울한 기분이 들어 세가지만 써봤다. 같이 산 이후로 집안일, 특히 화장실 청소 때문에 몇 번 싸웠다. 지난날의 다툼을 통해 나는 많이 내려놨고(설거지는 며칠 쌓일 수도 있지... 화장실 청소를 자주 안 할 수도 있지...) 동거인은 내가 시키는 걸 바로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뭘 시키면 딱 그것만 하는 동거인이 가끔 좀 답답하지만, 그래도 시키는 건 군말 없이 하니까. 그걸로 됐다.
동거인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생명체긴 하다. 내가 어디 멀리 나가거나 하면 밥 챙겨 먹으라고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일일이 얘기해 줘야 할 정도로 집안일에 관심이 없다. 집안일에 대한 루틴 자체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 같은 컨트롤 프릭과 같이 살면서도 죽도록 싸우지 않는 것 같다. 집안일에 대해서 동거인은 시키는 일에 고분고분하고, 쾌적하기만 하면 세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무심하리만치 관심이 없다. 우리는 서로 정말 다르지만, 나는 누군가 돌볼 사람이 필요했고 동거인은 돌봄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서로 잘 맞는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여자 둘이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며 사는 이야기였다. W2C4의 분자식을 가진 가족이었다. 작가 두 분은 우리보다 더 익스트림한 대착점에 서 있는 것 같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황선우 님은 내 동거인과 겹쳐 보였고 김하나 님께 왠지 모를 동병상련을 느꼈다. 물론 동거인은 맥시멀리스트라고 하기에는 그동안 돈이 없었고, 나는 미니멀리스트라고 하기에는 욕망이 많긴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만났다면 더 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나온 계산식 대로면 우리는 W2P3(여자 둘 식물 셋)의 분자식을 가진 가족이다. 같이 살면서 안 좋은 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좋은 점이 압도적으로 많다. 동거인의 생활을 돌보면서 내 생활도 더 잘 돌보게 되었고,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하루 종일 붙어 있는데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다. 한낮의 적막감에 외로울 틈도, 한밤중에 들려온 소음에 무서울 틈도 없다. 밤에 생각이 많아져서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옆에서 태평하게 자고 있는 동거인의 차분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밖에서 나갔다가 돌아올 때 나를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어떤 비용이든 함께 지불할 사람이 있다는 것, 함께 다음 집에 대해서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 모든 게 혼자일 때 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된다. 함께 하면 뭘 하든 좋은 게 배가 된다.
우리는 결혼에 뜻도 생각도 없는 비혼주의자들이다. 서로 알고 지낸 지 8년이 되었고, 같이 산지 4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고, 서로가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라고 믿고 있다. 이사하고도 나서 한동안 이 집에 맞지 않는 물건들을 당근마켓에 갖다 팔고 새로운 물건들을 사들였다. 이제 우리는 건조기와 안마의자를 가진 어마어마한 짐의 소유자가 되었다. 예전 집에서 데려온 식물과 선물 받은 식물과 새로 들인 식물을 죽이지 않고 다음 집으로 데려가려고 애쓰고 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다음 이사 때는 무조건 포장이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의 동거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아무튼, 여기도 여자 둘이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