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물이 식어가는 4월의 어느 날
늘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다. 시각적으로 상상하자면, 가슴 어딘가에 작은 구멍이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온갖 경험으로 속을 꾹꾹 채워도 콩쥐의 구멍 난 장독처럼, 안에 있던 것들은 늘 스르륵 사라진다. 늘 그런 기분으로 살아왔다. 어딘가 부족한 느낌.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 이런 게 인생이라고? 정말?
뭘 해야 이 느낌이 사라질까 무수히도 생각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알바를 하고 공부를 하고 상담을 받았다. 답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유명한 사람들이 ‘가슴이 뛰는 일’을 찾으라고 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려니 하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하는 동안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답고 만족스러워서 여기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도 짧아서, 도저히 그걸로는 평생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순간에 바로 총이라도 맞아 죽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을 구성하는 것이 보통 외부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 이토록 재미난 시간! 모든 게 그대로 멈춰서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떠나고 다음날 술이 깨면 간밤의 흥도 사라진다. 다시 내 몸속 어딘가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엄청난 행복감과 흥분과 기타 등등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졸졸 새어나간 기분이 든다. 아, 망할. 또 이런 기분이야.
여행은 좋았고 재미있었다.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풍경 안에 서보기도 했고, 끝도 없이 같이 놀고 싶은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그 망할 기분이 드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 완벽한 시간마저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극치의 즐거움과 신남을 느끼면, 갑자기 슬픔이 찾아왔다. 이 모든 게 영원할 수 없다는 게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펐다. 이 풍경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게 슬프고 이 사람들과 이렇게 즐거운 게 곧 끝난다는 게 슬펐다. 장마철에 욕실에 걸어둔 수건처럼 눅눅하고 퀴퀴해졌다 그래서 나는 기억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사람, 공간, 시간, 그 순간의 뭐든, 모든 게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면 주문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기억해. 이 마음을, 이 풍경을, 이 사람들을, 이 노래를, 이 술을, 이 아침을, 이 햇살을, 이 시간을, 이 공간을, 이 밤을, 이 어둠을, 이 온기를, 이 음식을, 이 기분을, 이 행복감을. 기억해. 기억해 제발.
하지만 얼마나 간절하게 빌든 간에 마법처럼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가능하니까. 나는 쉘든이 아니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기억을 붙잡으려고 했다. 남들이 순간을 즐기며 신나게 놀고 있는 가운데서, 혼자 의미 없는 사진을 남기는데 집착했다. 다음날 아침에 보면 빛은 퍼지고 알아볼 수 없이 흔들린,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밝은 사진만 수백 장 남는 걸 알면서도. 그 망할 기분과 함께 보는 사진이 나를 더 슬프게 할 것도 잘 알면서.
사회적 기준의 어른이 되는 것을 유예하고 몇 년이고 여행을 다녔다. 이렇게 살아도 구멍이 메워지는 건 아니구나.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직장을 구하고 멀쩡하게 남들처럼 살아봤다. 따박따박 월급도 받아보고, 놀 땐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휴가가 허락하는 최대한의 시간을 바짝 땡겨서 다시 이런 나라 저런 도시로 여행도 갔다. 그런데도 이놈에 구멍이. 그 망할 기분이. 그대로였다.
가끔 없어졌나? 싶어서 들여다보면 아직도 빈 독 아래 구멍이 보인다. 나는 뭘 채우고 뭘 간직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지. 나는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일까. 철이 들지 않는 것일까. 왜 늘 이렇게 길을 잃은 기분이 들까. 어째서 항상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까. 어떤 종류라도 좋으니 뭐에라도 확신을 가져보고 싶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 이것만큼은 확실해. 금전적 성공이나 유명세를 타는 건 바라지도 않아. 어떤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괜찮은데. 아주 사소하고 작은 거라도.
이를테면 나의 구멍을 메워줄 작은 두꺼비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