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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May 25. 2016

LIFE Experiment

실험을 거듭하는 인생에 대하여


4월 _ 봄



봄이다. 아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온갖 꽃이 도로를 싸악 덮더니, 이내 꽃잎만 남겨놓고 사라진다. 꽃도, 나무도, 햇살도 없는 사무실 한 구석에서 퇴사를 생각한다. 건조한 실내에선 다들 커다란 물병을 옆에 끼고 틈틈이 물 마시기에 열을 올린다. 나는 물을 마시고 메일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파일을 확인하고 화장실에 갔다 와서 고객사에 잠시 전화를 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점심을 먹고, 오전을 오후에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하고는 아무것도 한 것 없는 하루를 마감한다.


봄만 되면 어쩜 이리도 처량해지는지. 내 마음을 알리 없는 꽃이 잔뜩 피어나면 매년 앓는 꽃가루 알레르기로 쉼 없이 코를 훌쩍인다. 4월 들어 포근해진 날씨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천천히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달리다 또 퇴사를 생각한다. 일이 견딜 수 없다거나, 정말 싫은 상사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사실 지금껏 굉장히 운이 좋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만두고 싶다.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회사에 다니면 3개월 단위로 고비가 찾아온다고. 그 얘기를 하도 들어서인지 정말 3개월, 6개월, 9개월, 그리고 1년이 됐을 때 한 번씩 진지하게 퇴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차라리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다.


회사라는 공간에 매여 일을 시작한 지 올 유월이면 꼭 4년이 된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2년 6개월을 일하고 지금의 직장으로 옮기면서 1주일을 쉬었을 뿐이다. 호기롭게 일부터 때려치우고, 한 몇 달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도 가고 백수 생활도 좀 즐긴 후 구직에 나설 만큼 신경이 두껍지 못하다. 말도 안 되는 자기소개서와 가까스로 정리한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두통이 올 지경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퇴사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건, 비단 몸 담은 회사가 합병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도 아니고, 끝없이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서도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다. 언제까지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언젠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면,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굳이 말하자면 도망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맞서고 싶은 마음이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당연히 경제적인 이유다.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고 산다고 해도 누워있을 공간을 위한 돈이 필요한 세상이니까. 이건 그다지 슬프지 않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두 번째 이유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조금 슬플 수도 있다. 회사를 그만 두면 대체 뭘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인생의 의미'라는 걸 찾으려 노력했다. 그 노력은 보통 '쓸데없는 생각'과 '괜한 걱정'을 동반했고, 엄마의 잔소리와 등짝 스매싱의 주범이 됐다. 그래도 기죽진 않았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한 이십 대에는 그 의미가 여행에 있는 줄 알고 몇 년 동안 외국을 떠돌아다녔다. 벌어서 다니느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아무도 안 가는 이상한 곳에 가 닿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여행이 가르쳐 준 삶의 의미는 여전히 마음 한가운데에 박혀있다. 우리는 모두 여행하기 위해 태어난다. 우리의 삶이, 그 전 과정이 결국 하나의 큰 여정이다. 말로 하면 허탈할 정도로 명료한 걸 깨닫기 위해 꽤 시간을 들여야 했다. 남들은 다 아는 걸 나만 이만큼 멀리 와서 깨달은 건 아닐까.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떠났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는 몇 년째 회사를 다니며 밥벌이를 한다. 일을 하고는 있지만 늘 무언가를 찾고 있다. 이를테면 나의 적성을. 나의 소명을. 나의 쓰임을. 누군가는 그런 건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하고, 또 어디서는 그런 게 아예 없다고도 한다. 자기개발서를 보면 노력해서 안될 일은 없다며 더 노력하라고 하고, 어른들은 그게 다 배부른 소리라며 정신 차리고 오늘 하는 일이나 잘하라고 한다.


이 모든 해답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느 하나 자신 있게 선택하지 못하고, 도돌이표처럼 계속에서 같은 걸 생각하고 고민한다. 퍽 미련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마음은 계속 같은 곳을 맴돈다. 대체. 나의. 소명은. 어디에. (알려주려면 알려주고 없는 거면 없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몇십 년씩 한 직장에서, 혹은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끊김 없이 일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나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졸업한 코찔찔이. 생활의 달인에 나온 분들의 숙련된 실력을 넋 놓고 보다가 존경심이 치밀어 눈물을 찔끔 흘리는 초보 직장인. 매일매일 빌딩 숲을 지나 자로 잰 듯 똑같은 출근을 반복하는데, 왜 아직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한 기분은 가시질 않는지. 정말 궁금하다.


취미는 많지만 그걸 돈벌이로 키워보겠다는 열망은 없다. 돈벌이가 될 만큼 좋아하거나 잘하는 게 없기도 하고, 그럴 수 있다 해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돈벌이로 삼을 용기가 없다. 주위 친구 중 몇몇은 취미도 돈이 될 수 있는 게 좋다며 캘리그래피나 앙금 플라워를 배워서 자격증을 딴다고 하던데. 여전히 나는 취미는 취미, 일은 일이다.


혹시 모든 걸 다 버리고 한 가지를 죽도록 추구할 용기가 없는 게 문제는 아닐까. 뭐, 그런 용기가 없는 건 사실이다. 쪽박 차면 부모님께 용돈 받아쓸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이제 용돈은 드리는 거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혹은 이 일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여!'라는 확신이나 믿음도 없으며(누가 100% 성공할 걸 알고 도전하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본인은 성공하리라 믿고 달려드는 거라고 본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도전할 만큼 대단한 목표가 있거나 엄청난 성공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인생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시간낭비가 아니길 바라는, 뭐에 라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희망에 찬 마음으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름의 실험을 거듭한다. IT 관련 기술을 배워보겠다고 몇 백만 원을 들여서는 C언어의 장벽에 가로 막히기, 해도 해도 늘지 않는 외국어 배우기, 컴퓨터부터 부동산까지 갖가지 자격증 공부하기 등.


적성 찾기와는 별 관련 없는 경험도 꾸준히 추구한다. 문신(작고 현란하지 않은 걸로), 피어싱(양 귓불을 10mm까지 늘려봄), 채식주의자 되기(한 채식주의자의 책을 감명 깊게 읽고 1년간 비건 행), 다른 나라에서 한동안 살아보기, 이상한 캘리그래피, 어색한 그림 그리기, 게으른 글쓰기 등.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려고 주간지를 구독해 일요일마다 공들여 읽고 있다.


나에게 허용된 비용과 시간과 상황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지만, 수많은 안전장치로 인해 어정쩡하게 열린 문으로 아직 들어온 건 별로 없다. 그래도 문을 닫지는 않는다. 두려움을 걷어내고 조금씩 더 열어본다. 크고 작은 실험들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그러고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면, 끝끝내 나의 쓰임을 찾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 노력 탓이겠지. 그래,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지.


나는 아직 나의 적성도, 소명도, 쓰임도 모른다. 어떻게 해면 알 수 있는지 이미 세상에 나온 수많은 해답 중에 그 어떤 것도 아직 믿지 못한다. 어쩌면 죽을 때나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쓰임 같은 건.


그래도 괜찮다. 나에겐 나만의 작은 실험이 있으니까. 랄프 왈도 에머슨의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더 많은 실험을 거칠 수록 더 나은 인생이 된다."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선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이 말만큼은 알고 또 가슴 깊이 믿고 있다.


All life is an experiment.
The more experiments you make the better.
| Ralph Waldo Emer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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