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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Jul 12. 2016

죽음에 대한 집착증

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밀어낼 수 없나


5월 _ 더운 봄



철이 들고나서, 혹은 나라는 인간이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 왜인지는 모른다. 남들도 으레 나만큼 한결같이 진지한 태도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당시 가정환경을 고려해볼 때 사춘기 + 약간의 우울증이 아니었나 싶다. 다행히 그런 상태를 알아봐 주신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몇 차례의 개인 면담 끝에 큰 문제없이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여행을 시작했다.


미끄러지듯 여행에 빠져든 나는 그 길에서 어느 때보다도 죽음을 가까이 느꼈다. 여행 자체가 죽음을 위한 빛나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왜 떠나야 하는가. 왜 나는 오늘 이 불안정을 누르며 여행을 하는가. 여행은 오늘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거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 오늘 떠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하는 거다. 몇 년씩 여행을 하고, 지구를 몇 바퀴씩 도는 사람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그런 얘기를 무수히도 많이 읽고 들었다. 말 그대로 여행자는 오늘을 산다.


그동안 그 모든 은유와 비유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충실히 오늘을 사는 삶에 치중하였건만, 어느 날 길고 긴 길 한가운데서 내가 오늘만 살고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슴 철렁한 결론에 도달했다. 오늘을 후회 없이 살겠다는 나는 죽었다. 그때까지 누리고 있던 게 진짜 자유인 줄 몰랐던 여행도 죽었다. 이제 실제적으로 죽을 날이 가까워 왔을 때나 그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겠지. 그 어떤 것에도 걸리는 것 없이.


여행에서 돌아온 지가 벌써 여행을 한 시간만큼 흘렀다. 아직도 여행에 대한 비유나 은유가 좋아서, 인생이 곧 길이고 여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산다. 죽음을 향한 여정.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음에도, 어째서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하는지. 유난히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들시들해지는 요즘이다.


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이다. 이를테면 죽기 전 3분, 죽기 전 1분,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 왜 그런 쓸데없는 걸 생각하냐고 타박도 많이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생각은 해가 갈수록 또렷하게 다가온다.


숨을 쉴 수 없는 고통, 혹시라도 사고나 테러로 인한 죽음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고는 바로 비행기 추락이다. 꼼짝없이 몇 분 후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추락하는 혹은 바닷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걸 상상하면, 온몸이 오싹해지고 털이 곤두선다. 그리고 그런 사고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알 수 없는 고통에 몸서리친다. 고이 잠드소서.


이게 다 죽음을 실제로 접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지 때문일까.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 30년 넘게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기억하는 마지막 죽음이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대여섯 살 무렵인데 어렸을 때라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그저 빛이 잘 비치는 방에 할머니가 누워계셨는데, 할머니 주변으로 모여 앉은 집안 어른들의 모습이 무척 어두웠던 장면만 언듯 떠오른다.


죽을 때 내가 죽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테러라면 한 순간에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고, 비행기가 추락하면 기압의 영향으로, 병원에서라면 진통제 등으로 인해 이미 제정신이 아니겠지. 그렇게 믿고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오늘을 충실히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오래도록 이어져온 생각이 뿌리를 깊이 박고 가지를 뻗어낸다.


요즘은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가슴이 철렁한다. 소화가 안되거나 배탈이 나거나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매년 꼬박꼬박 건강검진도 받고 있고, 음식을 가려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지만 걱정은 갈수록 심해져서 가까운 사람들까지 괴롭게 만든다.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날 상태가 안 좋으면 가슴이 내려앉으며 패닉 상태가 된다. 그렇게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일면 몸도 그에 반응하며 안 아프던 데도 아픈 것 같고 기분도 따라서 바닥을 친다. 이런 게 마음의 병인가. 아픈 정신이 몸을 잠식한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언젠가 아프더라도 지금은 아닌데. 왜 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지. 걱정을 한다고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왜 몸의 마음이 머리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지.


오늘도 밥을 잘 넘기지 못하고,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아.



Imageⓒ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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